블랙 톰의 발라드
빅터 라발 지음, 이동현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크툴루 신화를 아시나요? 그리스로마신화, 북유럽신화는 알겠는데 크툴루는 어느 나라 신화냐?!공포소설의 거장 H. P.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존재 크툴루를 포함해 여러 이형의 신들이 등장하는 어두운 세계관을 가진 신화입니다. 크툴루 신화가 기록된 금서 '네크로노미콘'을 통해 밀교처럼 이어지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다른 작가들이 크툴루 신화를 차용하기도 해서 진짜 있는 신화처럼 느껴진다는 거죠.


해저에서 잠들어 있는 사악한 신적인 존재인 크툴루는 『레드 훅의 공포』에도 등장합니다. 이 소설은 당시 이민자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욕이 난무했지만, 워낙 거장이다보니 살아남은 작품이었다고 해요. 그 아쉬움과 작가에 대한 비판을 담은 소설이 바로 <블랙 톰의 발라드>입니다. 러브크래프트 원작의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이어받으면서도, 혐오로 가득했던 시각을 빅터 라발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엇갈리는 심정으로 H. P. 러브크래프트에게 바친다." 


1920년대 재즈 시대, 이민자들이 넘실거리는 뉴욕 할렘에 사는 흑인 청년 토미의 시점으로 진행하는 <블랙 톰의 발라드>는 백인의 눈으로 바라본 원작의 사건들을 교묘하게 뒤집어엎습니다.


실력 없는 음악가로 잡일을 하며 생활하는 토미에게 다가온 로버트 수댐. 그가 주최하는 파티에서 연주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데. 권위 의식으로 가득 찬 백인 로버트 수댐의 파티에 초대되는 사람들은 할렘에서 온 흑인들, 레드 훅에서 온 시리아인들과 스페인 사람들, 파이브포인츠에서 온 중국인들과 이탈리아인들 등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이민자들이었습니다. 과연 무슨 작당을 하는 걸까요.


한편 로버트 수댐을 뒤쫓는 하워드 탐정과 말론 형사. 원작에서는 경찰 말론의 눈으로 진행되었는데, 원작의 대사들이 이 소설에 인용되기도 해요. 이민자들이 사는 동네를 "지저분한 혼혈인들로 얽히고설킨 미로"라고 지칭하듯 원작에 깃든 백인 중심 사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시 미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보게 됩니다.


백인들이 사는 동네를 지나갈 때면 고개를 숙이고 발을 끌며 어수룩하게 보이는 행동을 할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않기를, 무관심의 대상이 되길 자처했던 토미. 하지만 탐정이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쏜 총탄에 살해된 아버지의 사건을 계기로 토미의 마음이 변하게 됩니다. 탐정이 토미의 아버지를 쏜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은 정말 혈압 솟구치게 하더라고요. 무감하게 묘사하는 장면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토미의 비탄한 감정을 더 끌어낸 것 같아요. 토미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토미가 아닙니다. 피에 젖은 기타를 가지고 다니는 '블랙 톰'이 됩니다.


"차라리 무관심이 다행스러운 일일 수도 있어." - 블랙 톰의 발라드 ​


로버트 수댐이 이민자들을 모아 퍼뜨리려는 이야기는 크툴루 신화와 맞닿아있습니다. 신천지로 이끈다는 크툴루의 탄생 스토리가 로버트 수댐과 블랙 톰으로부터 발화되고, 그 과정에서 러브크래프트 작가까지 카메오로 등장시킨 빅터 라발 작가의 센스가 재미있었어요.


크툴루든 원작이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블랙 톰의 발라드>를 먼저 읽으셔도 전혀 문제없이 읽을 수 있지만, 읽을만한 괴상한 공포 이야기로만 끝내지 않으려면 소설의 탄생 비하인드를 아는 게 훨씬 더 재미난 건 사실이에요. 원작 『레드 훅의 공포』와 비교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할 겁니다. <블랙 톰의 발라드>에 등장하는 '특별한 책'과 크툴루 이야기, 현대 흑인 문화에 영향을 끼친 슈프림 알파벳이 소설에 등장하는 의미 등 더 깊은 이야기에 관심 갖는 계기가 됩니다.


<블랙 톰의 발라드>는 있을 법하지 않은 미지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데, 스티븐 킹의 초자연 공포물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읽어보세요. 저는 H. P. 러브크래프트 작가의 책은 고딕 호러 판타지 <몬스트러몰로지스트> 시리즈만 읽어봤는데, 이 작가의 세계관은 접하면 접할수록 흥미롭게 다가오네요. 작가의 작품들을 언젠가는 독파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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