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녀 이야기 환상문학전집 4
마가렛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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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페미니즘 문학 걸작으로 손꼽히는 마거릿 애트우드 작가의 <시녀 이야기>.

2017년 4월 Hulu 에서 The Handsmaid's Tale (핸드메이즈 테일)미드 방영 예정작이어서 재조명 받고 있는 소설입니다. 85년 작품이고 SF 소설이라해서 엄청 먼 미래나 다른 세상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작가의 시대를 그려낸 20세기 후반이었어요. 그래서 사실 더 충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장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바탕으로 세상이 이렇게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두려웠습니다.

 

<시녀 이야기>는 한 여자의 시점에서 과거의 추억을 오가며 현재를 이야기하지만, 이 현재 역시 동시진행이 아닌 시간차가 있는 회고록 형태입니다.

 

미 정부를 한순간에 장악하고 세운 길리어드 공화국은 철저히 통제된 사회입니다. 방사선, 방사능 물질로 인한 오염, 변형 매독균 등으로 불임이 되어버리고 기형아를 낳는 일이 흔해져, 인구가 격감하게 된 상황.

그것을 뒤집기 위해 세워진 길리어드 공화국의 우선순위는 아기입니다. 희귀해지면 가치가 올라가는 법. 여성은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새 가치가 되었습니다. 쾌락의 요소를 철저히 제거하고 욕망조차 품으면 안되는 존재가 된 여성. 그동안 가졌던 권리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남편이 있었던 경우여도 재혼이 아닌 첫 번째 결혼한 아내의 위치만 인정하고 그 외의 모든 여성은 권리를 박탈당합니다.

 

 

 

길리어드 공화국의 알 낳는 여왕벌. 그녀들을 '시녀'라 부릅니다.

그 외 집안 살림을 맡는 '하녀', 순찰 역할의 '수호자', 정부의 감시자 '눈' 등 이렇게 길리어드 공화국에서 사용하는 명칭이 따로 생겨났습니다. 부부간에 아이가 없는 직책 높은 '사령관'은 시녀를 배당받습니다.  시녀는 사령관 이외의 남성들과는 절대 교류가 있어서는 안 되고, 일반 남성들도 시녀를 욕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면 안됩니다.

빨간 드레스와 하얀 베일을 쓴 채 공화국의 보호와 감시를 동시에 받는 시녀가 된 '나'.  서른세 살인 '나'는 이혼한 남자와 결혼을 하고 딸까지 있었지만 길리어드 공화국의 새 규칙으로 모든 것을 잃고 시녀가 되었습니다.

 

'나'를 소유한 사령관의 죄책감을 이용하기도, 은밀한 일탈에 끌려다니기도 하지만 시녀의 존재는 임신이란 것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죠. 이 집에 배치된 '수호자' 닉과 거래를 하는 '아내' 입장에서도 얼른 시녀가 임신을 해 건강한 아기를 낳아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합니다.

모든 이가 아기를 소망하고, 시녀를 보호한다는 명목하게 보상의 의미로서 아기를 원하지만 그런 기쁨을 줄 수 있는 존재인 시녀는 그저 아기를 담는 그릇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소설 속 '나'의 본명은 끝내 나오지 않습니다. 시녀가 된 후 부여받은 '오브프레드'라는 이름조차 of fred, 프레드 사령관 소유라는 의미일 뿐입니다.

 

 

 

옛 시절이라고 해 봤자 겨우 몇 년 전.

지금은 과거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지만, 딸들의 딸들의 세대를 거치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옛 시절은 돌연변이의 시대일 뿐. 남편에 대한 철저한 순종과 함께 여성은 출산으로서만 구원받는 존재로 남아있게 될 거란 사실이 두렵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어떻게 세상이 뒤바뀔 수 있을까 납득할 수 없을 만큼 경악스러웠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실제 세계사에서 벌어졌던 유대인 학살 과정도 이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통제된 사회에서 기존 통념과 가치관의 무력화는 너무나도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저항 세력도 있죠. 하지만 대부분은 힘에 굴복하고 맙니다.

 

성과 권력이 만났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이 소설을 남자가 읽었을 때 그들은 일부다처제를 변형한 '시녀'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할지 여자 입장에서 솔직히 궁금하긴 합니다. '시녀'를 배당받음에 너무 좋아하지는 마시라. 시녀를 배당받는 이는 권력을 가진 극소수일 뿐. 만약 정말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단지 아기가 없는 부부라면 그 또한 처참해질 것이니.

 

무분별한 낙태, 산아제한은 물론 현대에 이르러서는 아이를 키울 감당을 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

출산율의 하락은 인구 격감 사태를 낳고 고령화사회가 된 오늘날, <시녀 이야기>의 내용이 그저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아닌 것만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요.

 

"인류란 참 잘도 적응하고 살지.

정말 대단해, 소소한 보상이 조금만 있어도, 어떤 상황에든 적응하고 사는 걸 보면."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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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을품은맘 2017-06-21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볼까 ᆢ망설이던차ᆢ님의 글을 읽어본후ᆢ꼭 읽어봐야겠단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 30년 세계화가 남긴 빛과 그림자
브랑코 밀라노비치 지음, 서정아 옮김, 장경덕 감수 / 21세기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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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연구 분야 세계 최정상급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의 불평등 경제학 책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21세기 자본』의 토마 피케티,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강력 추천할 정도로 오늘날 글로벌 불평등에 관한 이론과 해법을 제안한 책입니다.

 

금수저와 흙수저만 있는 중산층 몰락 시대. 승자독식의 세계에서 최상위 1%만 희망이 있는 시대를 사는 나머지 99%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국가 간 불평등뿐만 아니라 국가 내 불평등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 내가 직접 겪는 현실 세계의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읽어볼 만 했습니다.

 

 

 

 

토마 피케티는 부의 불평등 초점 맞췄다면, 브랑코 밀라노비치 저자는 소득 불평등에 주목해 모든 계층을 포괄하는 불평등에 초점 맞춥니다. 토마 피케티의 이론이 설명 못하는 부분을 커버하는 이론을 내놓았습니다.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도표까지 있어 책 전반의 구성을 이해하기 좋았어요.

 

세계화의 영향으로 생긴 글로벌 불평등. 글로벌 신흥 중산층 탄생, 자국 내 중산층과 중하위층 정체 요인, 전 세계 금권정치 세력 부상이라는 세 가지를 중점으로 민주주의의 미래에 의문을 제시하고, 국가 내 불평등과 글로벌 불평등을 축소하는 데 필요한 제안을 합니다.

 

 

 

글로벌 불평등을 다룬 이 책은 각종 도표와 그래프가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그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그래프는 코끼리 코가 들린 모습인 코끼리 곡선입니다. 

A, B, C 지점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실질소득 증가율이 최고인 A는 신흥국 국민 중간계층이고, A보다는 분명 부자인데 실질소득이 전혀 증가하지 않은 B는 OECD 회원국의 중하위층입니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우리가 아는 좀 잘 산다는 나라 중하위층 집단이 여기에 해당하죠. 실질소득이 급증한 C는 세계 최상위 1% 집단입니다. 즉 세계화의 승자는 아시아 빈곤층, 중간계층이고 최대 패자는 전통적인 부자 나라들의 중하위층인 셈입니다.

 

이 그래프를 절대적 변화인 달러 증가액으로 관점 바꾸어 보면 최상위 1%가 독식한다는 것으로 나온다고 해요. 최상위 1%의 소득액 1%만 증가해도 전 세계 중간계층 총소득의 절반에 해당합니다. 금융위기 이후 최상위 1%의 소득성장세는 조금 둔화되긴 했지만 어쨌든 코끼리 곡선은 세계화의 양면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소득수준이 매우 낮을 때는 심하지 않던 불평등이 경제발전으로 증가하다가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불평등이 다시 감소한다는 기존의 쿠즈네츠 가설을 반론합니다. 최근 고소득국가의 불평등이 증가한 까닭을 해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토마 피케티의 이론은 쿠즈네츠 가설을 대체하는 데 성공해 눈길을 끌었는데요, 대신 20세기 이전의 불평등 변화는 설명하지 못한 채 지금 시대 상황만 설명 가능한 이론이라는군요.

 

브랑코 밀라노비치 저자는 쿠즈네츠 가설을 확장한 쿠즈네츠 파동이라는 이론을 제시합니다. 산업혁명 이전부터 가장 최근까지 일어난 불평등 변화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불평등 감소 요인은 다르지만 지난 500년간 불평등 증가와 감소가 교대로 나타났다는 걸 보여줍니다.

 

 

 

보충설명 파트는 경제학 용어에 낯선 이들에게 한결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0억 달러는 바퀴 달린 대형 여행용 가방 500개 필요하다는 것처럼 추상적인 개념을 명료하게 설명합니다.

이론을 설명할 때에도 저자는 불평등 변화가 장기간에 걸쳐 어떻게 변화했는지 실증자료와 그래프로 소개하는데 수학적 사고 머리가 약한 저도 차근차근 따라갈 수 있었어요.

 

경제적, 정치적 요인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불평등 변화.  나라별로 시점은 다를 수밖에 없지만 불평등의 증가와 감소 순환 형태는 결국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고 합니다. 현재는 제2 쿠즈네츠 파동의 시작점이라고 보는데요, 과거를 살펴보는 이유는 어떤 요인이 제1 쿠즈네츠 곡선 불평등 상승 정점을 꺾었는지 파악한다면 제2 쿠즈네츠 파동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거죠.  그런데 지속불가능할 정도로 심화된 국내 불평등의 산물이었던 1차 세계대전으로 불평등 상승에 종지부를 찍었다 해서 이번에도 우리는 전쟁을 용인할 수는 없습니다. 평화적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는 세계가 점점 신고립주의로 가고 있다는 겁니다. 부유한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누리는 혜택을 시민권 프리미엄이라는 개념을 붙였는데 국가 간 소득 격차가 크면 개인의 소득도 좌우된다는 이 개념은 유럽 난민 급증, 저소득국가에서 고소득국가로의 이주 문제라는 현실 상황에서 이주 문제 해결의 근본 대책 없이 그저 장벽 쌓기에만 급급합니다.

 

앞으로 글로벌 불평등은 어떻게 변화할까에 대한 저자의 답은 "우리가 가까운 시일 내에 세계 만민이 평등한 유토피아에 살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라는 것입니다. 신 자본주의에서는 부유한 자본가와 부유한 근로자가 일치합니다. CEO이면서 주식을 가진 현대의 최상위층 1%는 능력주의처럼 비칠 수 있어 정치적 해결은 특히 힘들다고 합니다.

 

중산층에서 최상위층으로 경제권력이 이동하는 금권정치는 미국에서 이미 나타나는 상황이고, 포퓰리즘과 자국민 우선주의의 유럽 모습 등 민주주의가 유명무실해지는 상황에 이릅니다. 중산층의 분노를 대변해줄 정치 지도자가 과연 있을까요. 정부 정책의 중요성이 강조되지만 현실적으로 세계화의 혜택이 평등하게 분배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9%는 두 번째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격차를 최소화하는 것에 대한 해법은 결국 내 손으로 뽑는 정치인의 역할이 상당할 거란 생각이 드네요. 국내 불평등 문제를 어떤 정책으로 펼칠지 제대로 보는 눈을 길러야 하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습니다.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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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의 신 - 우리 아이를 프레젠테이션 스타로 만들어주는 푸른들녘 교육폴더 2
박효정.임선경 지음 / 들녘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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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경우 초등 5학년 때부터 프로젝트 발표 수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는데요, ppt 작성해서 발표하는 과제를 팀별, 개인별로 각각 하더라고요.

5학년 국어, 사회 시간에 여기저기 흩어져 배웠던 것들을 통합해 이해한 채 수행해야 하고요. ppt 작성 스킬을 간단히 알려주긴 하지만 아주 기본사항뿐이었습니다. 주제에 맞는 자료 수집과 정리, 발표 진행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은지라 파워포인트 프로그램 같은 기술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다룰 줄 아는 상태인 게 유용해요.

 

<발표의 신>에서는 중2 학생들의 발표 프로젝트 실행 과정을 보여줍니다. 발표의 매 단계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핵심 내용을 소개하고, 아이들의 실제 상황을 스토리 형식으로 구성했습니다. 팀별 프로젝트를 설명하지만, 자연스럽게 개인 발표에도 응용할 수 있어요.

 

단순한 지식, 정보는 누구나 쉽게 얻고 공유하는 시대. 이제는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재구성해 상대방에게 얼마나 잘 전달하고 설득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발표는 설명, 설득, 재미에 따라 그저 전달로 끝나는 게 아니라 듣는 사람의 의사 결정과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목적이 있어요. 가장 흔한 발표 사례로 자기소개가 있죠. 기억에 남는 자기소개는 어떤 것인가 생각해보면 발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지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로 핵심 메시지가 있을 것! 

 

 

 

핵심 메시지가 있는 발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책 <발표의 신>.

발표 기획, 자료 제작, 발표하기라는 세 단계로 나눠 세세하게 설명합니다.

 

 

 

발표 기획에서는 주제를 정하고, 논리 구상하고, 자료 조사하고 스토리보드 작성하는 것까지.

자료 제작에서는 템플릿과 화면 레이아웃을 잡아 간결 명료한 내용으로 구성하는 것을.

발표하기에서는 실제 발표를 위한 리허설 과정을 알려줍니다.

 

아이들 성격에 따라 팀별 프로젝트 수업에서 그저 머릿수만 채우거나, 단계에 따라 약점을 보이는 파트가 있기도 한데요. 성격을 탓하지 말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 훌륭한 발표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말문 트이는 훈련은 브레인스토밍의 효과를 강조하기도 하는데, 거침없이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보면서 적어나가는 것으로 부담감을 없애게 하더라고요.

 

 

이 책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건 실제 발표를 할 때 상황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근사하게 ppt 완성해 놓고도 실제 발표에서 버벅대면 안타깝죠. 핵심만 들어간 ppt 자료를 보며 직접 설명하는 발표. 자칫 중구난방 되어버립니다. 입장부터 인사말, 동작, 마무리까지 모든 과정을 리허설 해봐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발표 대본까지 제시해 참고하기 좋았어요. 평소 말하기 훈련은 TED나 세바시 영상을 참고하면 좋다고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발표 내용에 관한 한 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 ppt 작성 스킬만 중요한 게 아니라 발표 전체의 흐름을 하나씩 짚어보며 어느 것 하나 간과하지 않게 한 <발표의 신>. 우리 아이 필독서로 반복해서 익히게 하고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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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우리 언제 집에 가요? - 아빠, 엄마, 네 살, 두 살. 사랑스러운 벤 가족의 웃기고도 눈물 나는 자동차 영국 일주
벤 해치 지음, 이주혜 옮김 / 김영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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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 두 살 아이와 함께 밴 타고 영국 일주! 무려 5개월 간.
부모 손이 엄청 가는 나이대 아이 둘을 데리고 하는 여행이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해집니다.


프롬머 출판사에서 출간할 영국의 가족 친화적 명소 안내 가이드북을 만들려고 한 여행입니다.
그 책은 국내 번역되진 않았지만 <프롬머의 가족과 함께 하는 잉글랜드 여행>으로 출간되었다고 해요. <아빠, 우리 언제 집에 가요?>는 가이드북을 위한 여행을 하면서 가족에게 일어난 지극히 개인적인 스토리를 담은 에세이입니다.

 

 

 


아빠, 엄마, 네 살과 두 살 아이 둘의 짐도 한가득.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없는 일정이어서 매일 아침 차에 물건을 다 집어넣는데 달인이 될 지경입니다.
여행 출발 전 꼼꼼하게 챙긴다 해도 빠뜨린 물건들이 속출하고, 이동할 때마다 호텔에 두고 떠나는 물건이 수두룩. 그래도 무료 숙박, 무료 관람 등 공짜 여행에 가까워 그 부분은 진심 부럽더라고요.


처음엔 가족여행을 그렇게 길게 한다 하니 주변에서는 한결같이 뜯어말립니다.
그러다 둘이 이혼한다느니, 한 명은 죽은 채 돌아올 거라느니...

물론 여행을 하면서 의도와는 달리 정신적 스트레스가 한계에 달할 때도 있었습니다.
아이 둘은 번갈아가며 광기 부리며 칭얼대기도 하고, 패배감을 느낄 만큼 부풀려진 정보 때문에 실제로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곳도 있었고.

 

 


그 와중에 아버지의 간암 소식, 교통사고, 입원 등 숱한 사건 사고까지.
여행 도중 잠시 가족과 떨어져 아버지를 만나러 오가는 저자. 결국 아버지의 장례까지 치르면서도 여행은 끝까지 마무리 짓습니다. '점점 느려지다가 멈추는 시계 초침처럼 소진되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와의 관계 정리를 하는 저자의 모습은 진한 감동을 안겨줍니다.

 

교통사고 에피소드는 밴을 폐차시킬 정도로 큰 사고였던 터라 아직 3개월이나 남은 시점에서 이 여행을 그만두느냐 계속하느냐의 갈림길이 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포기의 순간이었지만 "기회를 놓치지 마라. 기회를 붙잡는 게 인생이다."라는 아버지의 한 마디가 힘이 되었습니다. 렌터카로 남은 기간을 여행하게 되면 빈털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도전합니다.


최고의 날이 있기도, 최악의 날이 있기도 한 영국 일주 가족여행.
그중 최고의 순간은 언제나 체크인, 체크아웃, 다음 행선지로 갈 때였다고 하니 새로운 곳을 향한 모험심만큼은 충만했던 나날들을 보냈네요.

 

 

 


총 435번의 방문, 총 주행기록 8,023마일.
여행의 허니문은 며칠뿐이었고 매일 다른 곳에 숙박하며 느긋하게 세탁할 여유조차 없던 여행이었지만, 다양한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요령이 점점 늘어가는 걸 보게 됩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반짝이게 하는 곳도 있었고, 아이들 컨디션에 따라 포기하는 곳도 생기면서 가족여행 가이드북을 위해 리얼하게 몸소 겪은 가족.


여행 그 자체가 주는 에너지는 소진되기 마련이지만, 여행을 휴식하는 시간도 가지면서 적절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보여줍니다.

전형적인 영미 문화권 이야기여서 유머 코드는 살짝 어긋날 때도 있었지만, 번역은 기막히게 잘한 느낌이네요. 시트콤 보는듯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여행을 마친 후 딸이 학교에 입학하는 날,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에 와서 아내 품에 안겨 우는 남자. 이런 감수성을 가진 남자 마음에 드네요. 그러면서 마지막 한 마디. 다음 여름 한 철을 몽땅 투자해 프랑스 가족여행을 하고 싶다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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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톡 5 - 두 명의 왕비 조선왕조실톡 5
무적핑크 지음, 와이랩(YLAB) 기획, 이한 해설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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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톡 구매시 받을 수 있는 조선왕조실톡 이모티콘 스티커와 조선왕조실톡 2017년 달력.
세로형 탁상달력은 사이즈가 딱 제가 원하는거라 작년에 이어 올해도 책상에 안착. 날짜마다 조선 왕 생일, 사건 등이 표기되어 있어요.


조선왕조실톡 4권에서는 왜란과 호란을 겪은 시대를 그려냈죠. 조선왕조의 운명이 바닥을 친 상태에서 치욕의 호란 당사자 인조의 첫째 아들 소현세자가 죽은 뒤 둘째 아들 봉림대군이 왕이 됩니다. 17대 왕 효종입니다.

소현세자의 아들이 버젓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기적이었던 인조의 행태는 효종 이후로 정통성 문제가 정치적 빌미가 되어 혼란스러운 정국이 됩니다.

 

 

 

특히 서인과 남인의 예송논쟁은 학문적 대결에서 정치적 싸움으로 크게 번진 사건이었는데요. 효종이 죽자 인조의 젊은 왕비 자의대비의 상복 입는 기간을 두고 시작한 논쟁입니다. 3년이냐 1년이냐를 두고 1년 간 입기로 결정했다가, 윤선도의 상소로 다시 논쟁이 벌어지며 피해는 어마어마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당쟁싸움은 실세가 뒤바뀌는 정도였다치면, 이제부터는 서로 죽고 죽이는 목숨을 건 전쟁과도 같아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 현종의 어머니가 죽자 이번에도 자의대비의 상복 문제가 불거져 2차 예송논쟁이 일어난 겁니다. 자의대비 입장에서 현종의 어머니(효종의 왕비)는 맏며느리냐 둘째 이하 며느리냐. 적장자가 아닌 효종의 정통성이 이번에도 문제된겁니다.

 

 

 

조선 역대 왕들에게서 적장자가 아닌데도 왕이 된 사례는 있었지만, 유독 이때가 복수가 복수를 낳는 정치 게임의 시대였어요. 인조가 마흔 넘은 나이에 열 다섯 살의 어린 중전을 들인 바람에 인조의 둘째 아들 효종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어머니라 불렸던 자의대비의 인생도 참 안쓰럽습니다.

 

 

 

그나저나 조선왕조실톡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꿀잼입니다.

머리가 길었던 그들은 어떻게 상투를 올렸을까. 상투머리는 일명 똥머리라고 부르는 그런 형태잖아요. 그런데 직접 해 본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똥머리하면 제법 크게 뭉쳐지거든요. 그런데 사극에서 보면 상투가 참 얇직한 모양새입니다. 상투에 감춰진 비밀이 밝혀지는데요. 그야말로 쇼킹 그 자체 ㅠ.ㅠ 솔직히 이건 몰랐더라면 싶을 정도로 환상이 빠지직! 앞으로 멋진 배우가 상투 올린 모습보면, 배코 친 모양새가 머릿속을 둥둥 떠다닐 것 같아요 흑..

 

또 기억나는 쇼킹한 이야기는 한글소설 구운몽에 관한 거였는데요.
잘생긴 도련님이 여덟 미인들과 연애하는 러브러브 소설이었다니! 구운몽이 그런 이야기였다니! 고리타분한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급 관심 생겼습니다 ㅋㅋ

 

그리고 궁궐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이번에 다루고 있어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스토리를 간략하지만 기억하기 쉽게!

 

여섯 누이들 틈에서 자란 효종의 에피소드도 재미있는 게 있었는데요. 여동생인 숙휘, 숙정 공주에게 쓴 친필 편지의 추신에 적은 한 문장이 배꼽잡게 합니다. 악착스럽고 독하게 안부 편지 보내라기에 이렇게 쓴다고. ㅋㅋㅋ

 

18대 현종, 19대 숙종, 20대 경종까지를 다룬 조선왕조실톡 5권. 3명의 왕만 다루는 건 아니고, 인조와 현종 사이 17대 효종도 예송논쟁 논란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초반에 다뤄지고, 자식이 없었던 경종의 배다른 형제였던 21대 왕 영조의 연잉군 시절까지 다룹니다.

 

숙종 시대에서는 그 유명한 장희빈이 등장합니다. 인현왕후가 폐서인 되면서 장희빈이 중전으로 등극했고, 이후 또 다시 삶이 뒤바뀌는 그녀들의 운명을 보면 나쁜 남자 숙종을 좋게 보기 힘들더라고요.

 

엎치락 뒤치락 서인과 남인의 싸움에 왕의 권세는 바닥을 친 시대. 살아남은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 조선왕조 후반을 또 엉망으로 만들테니... 조선왕조실톡을 읽으면서 이제는 그저 웹툰 특유의 재미를 만끽하는 것 외에 두드러지는 참담한 실태에 착잡한 마음이 들기도 하네요.

 

이번 조선왕조실톡을 읽으면서 새로운 정보, 얼핏 알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것들을 많이 배웠습니다. 만화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책은 많이 나와있지만, 무적핑크 작가의 재미난 웹툰과 이한 해설가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매력은 놓치기 아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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