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사랑이 인종도 넘고 종교도 넘을 수 있다고 믿지만, 그런 사랑은 철부지 동화에서나 등장하는 법이다. 외교관 직분을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나와 생활을 꾸려 가는 것. 그것이 빅토르가 지닌 사랑의 무게요 한계다. 아쉽긴 해도 나는 그의 고뇌를 이해하기로 했다. 내 마음 역시 오로지 그만을 바라보며 감동하던 시절을 지나쳤으니까. 하찮은 일은 아니지만,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결혼식 얘기는 입 밖에 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또한 내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었다. 돌이킬수록 서로에게 생채기만 낼 뿐이니까. 잊는 편이 좋은 일도 있는 법이다. -3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