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의 벽 이청준 문학전집 중단편소설 7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1998년 4월
평점 :
절판


이청준에 관한 레포트를 쓰기 위해 관련된 소설을 몇 편 읽었는데 다른 책들은 내가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었는데 이 책만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김없이 읽어갔다. 그의 등단작인 '퇴원'에서부터 '소문의 벽', '황홀한 실종',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잔인한 도시', '겨울광장', '조만득씨'에 이르는 중단편들은 때로는 재미있게, 때로는 관념적으로 읽혀갔다.

  이 책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아니 이청준의 소설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 이 책에도 등장한다. '퇴원'에서는 자아망실증을 겪는 주인공이, '소문의 벽'에서는 피해망상증을 겪는 주인공이, '황홀한 실종'에서는 가학적 유희욕을 겪고 있는 주인공이, '겨울광장'에서는 미쳐서 있지도 않은 딸을 찾는 주인공이, '조만득씨'에서는 과대망상성 정신분열증을 겪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처럼 이청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현실을 회피해 자기만의 세계에 들어가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감시(전짓불)때문에 공포에 떨기도 한다.

  작가가 이런 주인공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사회의 병리적인 모습들을 조금씩 미쳐버린 사람들로 그린 것은 아닐까? 그들은 애초부터 불행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그들을 미치게한 것은 아닐까? '소문의 벽'에서 박준은 촉망받던 작가였고, '조만득씨'는 사람 좋은 이발사였고, '황홀한 실종'에서 윤일섭은 능력있는 은행원이었다. 이들은 건강하게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환경이 그들을 가만히 냅두지 않았고 그들은 좌절하게 되고 점점 깊이 그들의 내면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됐다.

  이청준의 소설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읽고나면 억압에 대해, 보이지 않는 폭력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 같다. 그리 두꺼운 소설들은 아니었지만 그 깊이와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바는 그 어떤 소설보다도 방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청준의 사유는 끝나지 않았다. 이 책 속에서 등장한 주인공들은 또 다른 소설 속에서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끊임없이 등장하고, 끊임없이 상처받을 것이다. 마치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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