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미 김영하의 <빛의 제국>을 읽기 전에 이번 책이 그의 다른 책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누군가는 실망스럽다고 했고, 누군가는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간 <오빠가 돌아왔다>에서 보여줬던 우회하면서 찌르는 방식도, <검은 꽃>에서 그들의 비극적인 삶을 바라보는 방식도 아닌 근 20년 동안 남한에 내려와 살고 있는 공작원이 북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24시간동안 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그 하루동안에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겪는 이야기들을 한발짝 물러서서 그냥 담담하게 서술해나가고 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2000년대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종말이 올 것이라고 떠들었던 1999년의 모습에서부터 지하철에 서로 마주보고 앉아 의미없는 시선을 흘리는 모습, 무인텔에 들어가 두 젊은 사내와 몸을 섞는 중년의 여자의 모습, 미행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분주한 거리를 빠르게 지나쳐가는 사람들의 모습. 이런 모습들은 그저 우리가 고개만 돌리면 바라볼 수 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전형적인 '남한'의 모습 속에서 이제는 그 곳의 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김기영이라는 공작원이 4번 명령, 즉 북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게 되고 일상이라 여겼던 그런 모습들을 '마지막으로 본다'는 느낌으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게 되고 그 모습들을 되새기며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남한을 떠나고 싶지 않아한다. 하지만 북의 복수가 두려웠던지라 그는 이리저리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북에서 내려온 공작원의 이야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어떤 비밀스러운 임무를 하는 인물을 떠올렸다. 하지만 김기영은 너무도 뛰어난 스파이였는지 그냥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단, 다른 사람에게 비교적 존재감을 덜하지만.) 남파 공작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자신의 임무에 대한 이야기나 성찰, 혹은 이념적인 내용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그저 아내와 중학생 딸을 둔 평범한 가장의 고뇌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공작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 '소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서로 같은 공간에 있지만 소통할 수 없는 사람,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여겼지만 실상은 커다란 비밀을 갖고 있는 사람들. 우리는 그렇게 개별화된 사회 속에서 개별화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실상을 다루고 있지만 이야기는 무겁지 않고, 분단이라는 소재를 이용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문제로 자리한다. 개별화된 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 우리는 어쩌면 밝은 빛때문에 그 뒤에 숨어있는 것들을 못 보고 지나쳐버리는지도 모르겠다. 김영하에게는 사회를 보는 눈은 마련되어있는 것 같다. 다만 그의 연배때문인지 아직 숙성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가 어서 그의 경험치와 내면을 숙성시켜 좀 더 멋진 작품으로 다가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아쉬움은 남았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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