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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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지 이청준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때문에 읽기를 꺼려하고 있었던 터라 자의반, 타의반으로 <당신들의 천국>을 집어들면서 내심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정작 책을 집어들고 나니 무거운 소재와는 달리 책장은 술술 잘도 넘어가서 별다른 어려움없이 읽을 수 있었다.

  책의 서문에서 작가가 밝혔듯이 이 책은 소록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문둥이들이 모여살고 있는 그 곳에 조백헌 원장이 새로 부임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부임과 동시에 터진 탈출사건때문에 취임식도 잠시 미뤄두고 탈출사건에 대해 파악하는 조원장. 섬에 대해 잘 모르는 그에게 보건과장인 이상욱은 이것저것 알려주며 그에게 도움을 준다. 그리고 취임식에서 조원장은 그들의 천국을 만들겠노라는 선언을 한다. 하지만 새로운 원장이 취임될 때마다 반복되는 이야기에 섬 사람들은 그냥 그런가보다하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이에 조원장은 자신의 계획에 따라 한 발 한 발 문둥이들의 천국을 만들어가려고 하는데...

  수업시간에 이 책을 들어 교수님께서는 제목의 탁월함을 언급하셨다. '우리들의 천국'이 아닌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제목이 주는 함축적 의미.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과 오늘날의 현실도 결국은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이야기들. 사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책을 읽기 전에는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시큰둥했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왜 그 곳이 '당신들의 천국'이 될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되었다. 원생들의 탈출사건이나 무관심한 태도 등에서 배신감을 느꼈던 조원장. 하지만 원생들의 내부에는 '정상인'에 대한 불신이 녹아져있었고, 실상 그들에게 천국을 만들어주겠다는 조원장은 그들을 지배하고 억압하고 있었을 뿐이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조원장의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였던 사람들. 조원장이 만들어놓은 의사소통을 위한 장치들도 결국엔 알고보면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억압도구로 자리하고 있었던 것. 천국을 만들려는 계획은 그들의 자유의지가 담겨있지 않았기에 결국 반쪽짜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내용들은 책의 결말부분에서 조원장이 다시 섬으로 돌아오고, 정상인과 원생의 결혼하게 되는 것을 통해 전환되며 끝난다. 이런 결말을 통해 '우리들의 천국'을 위한 믿음과 사랑의 싹이 아직은 땅 밑에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조금씩 그 싹을 티우고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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