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서울,1964년 겨울 유자약전 조용한 강 창비 20세기 한국소설 19
김승옥.이제하 외 지음, 최원식 외 엮음 / 창비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전공이 국문학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외국문학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전공자이지만 비전공자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창비에서 새로나온 20세기 한국문학을 접할 기회가 생겼고, 그 많고 많은 책들 중에서 <김승옥, 이제하 외>를 선택하여 읽게 되었다. 

  이 책 속에는 백익빈의 <조용한 강>, 이제하의 <유자약전>, <초식>,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김승옥의 <생명연습>, <건>, <역사>,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이렇게 총 3명의 작가의 아홉 작품이 실려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아홉 작품가운데 읽어본 것은 <무진기행>과 <서울, 1964년 겨울>뿐(물론, 제목만 보고는 몰랐는데 <건>은 예전에 수능공부하면서 지문으로 읽었던 기억이 나긴했다만 전 작품은 읽은 건 처음인 듯 싶다.). 심지어 백인빈과 이제하라는 작가가 있었는지도 알지 못했으니 전공자로 심히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이제부터라도 알아간다는 마음으로 읽어간 소설들은 예상 외의 감상을 불러일으켜줬다.

  기본적으로 이 책에 함께 묶인 작가들은 1960년대 활동했던 작가들로 그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고 그것을 대놓고 비난하기보다는 이야기를 통해 은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 부정적인 인물의 모습과 함께 그것이 잘못된 것을 알고도 차마 나설 수 없어 묵인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지는 것 같았다. <조용한 강>에서 아버지에게 맨날 두들겨맞는 삼능이는 아버지만 보면 도망다니지만 한편으로는 동네 아이들을 주무르고 있고, <건>에서 주인공은 형이 이웃집 누나를 강간하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선뜻 그녀를 불러내는 심부름을 맡기도 한다. 또, <생명연습>에서는 어머니를 죽이자고까지하는 형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것을 묵인하는 나의 이야기가 그려지기도 한다. 이런 다소 모순적인 유년의 모습뿐만 그린 것이 아니라, <유자약전>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로의 삶을 살아가려는 여자가 결국 순교하듯이 죽어버리는 이야기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에서의 아내의 뼈를 뿌리러 갔다가 우연히 만난 중풍 노인을 모시고 있는 미세스 최라는 간호사와 함께 몸을 섞고 그녀와 진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지만 그 다음 날 그녀는 신내림을 받게 되는 이야기, <서울, 1964년 겨울>에서 함께 숙박한 남자의 자살을 예감했지만 달리 손을 쓰지 않고 무관심하게 스쳐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역사>에서 가풍을 내세워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집에 들어가 살게된 한 남자의 고통과 역사(力士)임을 숨기고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현실에 억눌려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의 당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이야기들도 등장한다.  

  이런 각각의 작품들은 저마다의 위치는 다를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리얼리즘'이라는 하나의 가지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기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현실을 반영하고 그것을 소설을 통해, 그 속의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유자약전>처럼 환상적 리얼리즘의 모습으로, 때로는 비유적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처음 접해본 이제하나 백익빈의 이야기도 좋았지만,(이제하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며 김승옥을 재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익히 알고 있었던 <무진기행>이나 <서울, 1964년 겨울>뿐만 아니라 그 외의 작품들은  직접적으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으로, 때로는 묘사적으로 보여주고 있기에 이 책 속에 실린 해설을 빌리자면 '감각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렇기에 좀 더 많은 그의 작품들을 접해보고 싶은 욕심까지 들었으니 이 정도면 이 책은 내게 어떤 기회를 마련해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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