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야 1903년 가을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 지음/김진경 외 옮김/개마고원


이 책은 러시아어로 씌어진, 20세기 초의 한국에 관한 기록으로는 <조선, 1898년> <국역 한국지> <내가 본 조선, 조선인>에 이어 네 번째로 국내에 번역 소개되는 책이다. 러일전쟁 발발 직전이라 할 1903년 10월 10일, 민속학자이자 작가인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러시아 황실지리학회 탐사대의 일원으로 일본 거쳐 부산항 발을 내디뎠다. 곧이어 그는 뱃길로 원산에 도착한 뒤 금강산(안변) → 평강 → 양담(황해도) → 안양 → 양주 → 서울로 이어지는 여행길을 도보로 구석구석 탐색했으며 이를 러시아의 한 잡지에 연재했다. 환국한 뒤, 1905년 그 연재물을 수정보완하여 묶어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 세로셰프스키는 글의 서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판에 박힌 모호한 설명뿐인 당시의 한국에 대한 전설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부딪쳐 얻는 생생한 정보를 원했기 때문에 마침내 한국의 해안에 닿게 된 나는 오히려 그 어떤 고정관념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상태에서 마부와 통역사를 대동한 도보여행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이러한 지적 탐구심 때문에 불과 한 달 남짓한 여행이었음에도 이처럼 치밀하고 방대한 여행기를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몸으로 부딪쳐 얻은 체험적 정보에만 그치지 않고 (아마도 환국 후 재작업시 보태어졌을) 당시 비숍, 그리피스, 해밀턴, 달레, 레클뤼, 오페르트 등의 숱한 기록물들 역시 종합하고 분석하여 반영해놓고 있다.

이 책이 집필될 당시, 저자의 조국 폴란드는 러시아의 속국이었다. 책에서 러시아 침략자란 표현을 스스럼없이 쓰는 데서도 드러나듯 그의 러시아제국주의에 대한 반감은 대단히 강하다. 하지만 동시에 저자가 제대로 유럽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변방 폴란드 출신이어선지, 한국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선 미개한 야만국을 대하는 서구인의 문명론적 시각이 더욱 도드라지는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자신의 조국 폴란드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반(半)식민지가 되어 있는 대한제국에 대해 동병상련이 일개 경유 국가인 한국에 대해 방대한 저술을 하게 했음직하나, 그 시선은 때로 너무 신랄해서 경멸감까지 내비치는 식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양상을 보인다.

일본의 우월성과 한국 침략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발언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 당시 백성들의 피폐한 삶과 곪을 대로 곪아 무너지기 직전의 사회체제, 패악이 극에 달한 관료주의 등에 대한 냉엄한 관찰의 가치가 훼손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대한제국 당시의 여러 현실을 목도하면서 비판적이 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노릇일는지도 모른다.

 

세로셰프스키의 여행경로



지도 출처 : I.O. 라비노비치,<한국의 자연과 사람들> 1904년,페테르부르크

 

한국은 놀라운 나라예요! 땅은 아주 비옥해서 이집트처럼 작황이  좋지요! 한국산 쌀은 심지어 일본 쌀을 능가할 정도구요! 한국은 숲으로 끝없이 뒤덮여 있어요! 그리고 숲에는 값비싼 나무들뿐이랍니다. ....

한국은 매력적인 곳이에요. 꽃 핀 버드나무에는 동백나무와 월계수 숲의 축축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지요! 부드러운 공기와 햇볕과 따뜻하고 푸른 바다가 모든 걸 감싸고 있구요. 사람들은 지극히 선량하고, 아이들은 몸집이 크고, 기꺼이 세금을 내며, 권력을 무서워하고, 노동력도 아주 쌉니다. 그들은 대체 무엇을 먹고 살아가는 것일까요?! 단, 한 가지 결함이 있는데, 불결하다는 겁니다. 대신 한국 여자들은 착하고 균형 잡힌 체구에 가슴이 크지요. 몸과 비누만 쓸 수 있다면, 극동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들일 겁니다!

 



1903년 10월 10일 아침 6시, 우리는 부산항의 넓고 둥근 만에 닻을 내렸다. ....

거리에 한국인들은 많지만, 시내에는 한국식 집이 보이지 않았다. 한국식 집을 보려면 멀리, 그러니까 산중턱 골짜기에 위치한 시골 마을까지 가야만 했다. 멀리서 보니 마을은 폐허 같다. 사납게 짖어대는 회색 개들과 흰색 마포(말꼬리털로 만드는 '갓') 옷을 입은 아이들이 떼지어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한국인들은 크게 떠들며 대화하지만 움직임만큼은 조용하다. 그들은 길모퉁이나 집 담벼락 아래, 혹은 상점 주위에 모여 앉아 아주 작은 놋쇠 파이프를 긴 담뱃대에 끼워 점잖게 말없이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수염을 기르고 진지한 표정을 한 한국인들이 거리 가운데 쭈그리고 앉아서 우리를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밭은 좋은 도구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심지어 폴란드나 독일의 밭보다도 개간이 잘 되어 있다.

 



겉보기엔 촌스럽기 그지없는 한국 농민들의 태도가 유색인종을 대하는 서양 군중의 태도보다 훨씬 신중하고 정중하며 더 훌륭한 것은 사실이다.

날은 아직 훤했고 비도 그쳤기 때문에, 딱정벌레를 잡기로 하고 도와줄 아이들을 불렀다.

 



내가 곁에 앉아 책과 공책을 들여다보려고 했더니, 아이들은 그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으면서도, 끝내 책을 계속 읽어나가려 들지 않았다. 교사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국 한 소년이 책에 있는 큰 한자를 봉으로 짚어가면서 흥분 때문에 툭툭 끊기는 목소리로 뭔가 중얼대기 시작했다.

 





사방이 꽉 막힌 검은색 가마를 들고 짐꾼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앞면에 난 작은 창으로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 스쳐가듯 보이는데, 가마를 호송하는 키 큰 남자가 옆에서 우리를 경계하듯 뚫어져라 살펴본다.

 



서울의 시장. '배추' 를 팔고 있다.



궁궐 문을 나서는 황제의 행차


출처 :
http://paper.cyworld.com/dam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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