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얀 마텔 지음, 황보석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7월
구판절판


여행이란 가속이 붙는 것과도 같아서 멈추기가 어렵고 우리는 그것이 멈추기를 원치 않는다. 변화가 습관이 되고 습관은 변화시키기가 어렵다. -152쪽

내 삶은 일종의 분주한 고독, 활동은 많되 감동은 거의 없는 그런 삶이었다. -159쪽

내 첫번째 독창적인 생각은 질문의 본질을 파고드는 통찰이었다. 어떤 말이건 두 가지 범주, 즉 서술문 아니면 의문문 중 하나가 될 것이고 그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서술문의 종류는 수없지 많지만 평서문이건 명령문이건, 단문이건 복문이건, 이해가 되건 무의미하건, 그 모두가 한 가지 특징, 즉 홀로 설 수 있다는 특징을 공유한다. 예를 들어서 '엘레나는 조나단하고 같이 잔다'는 서술은 그 자체로 명확하기 그지없다. 거기에는 다른 어떤 설명도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의문은 그와는 달리 그 자체로는 서지 못한다. 그 속성상 다른 어떤 것, 즉 대답이라는 것이 당연히 따라와야 한다. 의문이란 파트너를 찾는 탱고 댄서들이다. 내 통찰은 의문은 답이 있을 경우에만 의문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말은 답이 알려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답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173쪽

아테네로의 기차 여행을 길고, 햇빛이 환하게 비쳐들고, 감상적이었다. 그리스의 경치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것이 고마운 일이었다. 내가 공항에서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일마일을 지날 때마다 눈물을 한 방울씩 빨아들여주는 그 경치가. -223쪽

내게는 사랑을 나눌 상대가 없다는 사실이 불만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독립- 무엇으로부터? 자유-무엇을 위한?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 누군가와의 친밀한 관계가 행복의 유일한 의미 있는 원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룸메이트들의 관계에서 보이는 느글거리고 질척거리는 사랑의 면면들이 더이상 역겹게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사랑을 추구하는 내 방식이 다르리라는 것, 그것뿐이었다. 조와 그의 남자친구인 이곤처럼 미리 정해진 역할에 구애받지 않는 관계와 더 비슷하게. -247쪽

우리의 첫 데이트인 <핸드릿>의 밤에 나는 한 남자를 위해 옷을 입는 기쁨과 고뇌를 알았다. 우리가 눈 덮인 길을 따라 계속 몸을 부딪치며 걷고 있던 동안에. 만일 과학자들이 체온 계측 장비를 가지고 우리를 관찰했더라면 몸이 한 번씩 닿을 때마다 다채색의 밝은 섬광, 강렬한 에너지의 불꽃이 이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340쪽

우리는 눈이 치워지지 않은 길을 따라 걸었다. 눈은 무릎까지 차올랐지만 성글었고, 우리가 별 어려움 없이 헤치고 지나가는 동안 반짝이는 빛을 발했다. 우리 두 사람의 목소리를 제외하고는 온 주위가 고요했다. 나는 내 안에서 흥분이 점점 고조되어가고 있는 것을 알았다. 이제 내게 그 눈은 눈이 아니라 금가루였다. 그리고 거리의 가로등도 가로등이 아니라 밤의 어둠 속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 왕관들이었다. 또 그밖의 다른 모든 색도 그저 색이 아니라 귀한 보석이었다. 티토가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더 많은 보석들. 사랑이 어린 시절의 한 형태인 것은 우리가 다시 그처럼 완전하게 매혹될 수 있고 그처럼 많이, 그처럼 쉽게, 그처럼 열렬히 믿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340~1쪽

무릇 어느 관계에서든 살짝 뒤로 빼는 순간, 조금 물러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정상적인 과정이며 의심이나 권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전체적으로 보기 위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다가가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과 같은 일이다. -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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