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르수 우잘라 - 시베리아 우수리 강변의 숲이 된 사람
블라디미르 클라우디에비치 아르세니에프 지음, 김욱 옮김 / 갈라파고스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데르수 우잘라>라는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땐 솔직히 그것이 사람의 이름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더불어 이 책이 논픽션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만큼 나는 이 책에 대해 무지했고, 어쩌면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하고나서 나는 낯선 곳에서 자연과 교감했던 한 남자 데르수 우잘라를 알게 되었고 그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이 책은 제목처럼 데르수 우잘라라는 고리드 족 원주민 사냥꾼의 이야기이다. 그는 이 책의 저자인 아르세니에프의 탐사대와 동행하여 그들에게 여러가지 도움과 교훈을 준다. 탐사대는 연해주 해안지역을 거쳐 테르네이만, 비킨강, 우수리강에 이르는 멀고 험한 길을 탐사하며 만약 데르수 우잘라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자연의 힘에 의해 죽을뻔한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곤 한다. 바람이나 안개, 소리를 듣고 큰 비가 내릴 것을 안다던지, 발자국을 보며 어떤 사람이 그 곳에 머물렀는지를 안다던지, 근처에 위험한 동물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들은 단순히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예측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사냥꾼이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보다는 그가 자연을 존중하며 자연과 교감하고자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기에 그런 직관들이 그에게 스며든 것이 아닐까 싶었다.

  오늘 날의 사냥꾼들은 무차별적으로 사냥을 행한다. 생존에 필요하지 않아도 건강상의 이유로 혹은 장식품을 만들기 위해 사냥을 하곤 한다. 하지만 데르수는 사냥꾼이지만 자신이 사냥해온 동물은 늘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눠먹는다던지, 동료를 의심하지 않는다던지, 혹은 우연히 마주친 호랑이를 총으로 쏜 뒤 죽은 호랑이의 살을 파먹던 구더기를 떠올리며 몇 날 며칠을 괴로워하는 따뜻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의 사냥은 오늘날 많은 사냥꾼들이 하는 것처럼 단순히 동물을 잡아 돈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정을 나누는 것이고 생존을 위해 행하는 행동일 뿐이었다. 그는 자연 속에서 동물의 우위에 선 사람이 아닌 '인간'이라는 하나의 개체로 살아갔을 뿐이었다. 때문에 그는 자연을 우리가 마음껏 빼앗을 수 있는 것이 아닌 하나의 인격으로 대했다. 떨어지는 혜성들을 보며 누군가는 전쟁이 일어날 조짐이다 누군가는 홍수도 혜성때문에 일어난 것 같다며 이야기할 때 데르수는 "저건 언제나 하늘을 간다. 사람들, 방해하지 않는다."며 그저 심드렁하게 중얼거린다. 이런 태도에 저자도 '자연을 인격으로 보는 데르수가 이해되지 않을 때도 많지만, 그의 말이 논리적으로 오류인 적도 없었다. 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판단했고, 또 인정할 줄 알았다.'고 이야기하며 데르수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데르수에 관한 이야기들도 흥미롭고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단순히 데르수에 대한 이야기만 펼쳐졌다면 다소 지루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런 점을 보완해주는 것이 바로 탐사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문명과 약간 거리가 있는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탐사대가 만난 그런 사람들의 삶을 잠시나마 바라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러시아에서 온 이민자들(슈거)때문에 자꾸만 사는 곳을 옮겨다니는 중국인들의 모습, 황금을 쫓아 지기트만으로 몰려든 사람들의 이야기, 가장이 죽으면 주위 사람들이 재산을, 심지어 어린 자녀까지 앗아가버린다는 타즈여인들의 삶, 30년간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타쿤치 일대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듯한 노인의 고독한 삶 등. 잠시 스치고 지나갈 뿐이지만 그들의 삶의 모습에서 나름대로의 삶의 애환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생활터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상상하며 읽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가끔씩은 낯선 개념이어서 아리송한 부분도 있었지만.)

  책의 결말부는 코끝이 찡해지게 만들었다. 모닥불을 피우고 잠든 데르수를 러시아인들이 데르수의 돈과 총을 노리고 죽게 만들기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서장과 같은 문명인에게 데르수와 같은 야만인의 죽음은 그저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는지 서장은 시체를 확인하러 온 아르시네에프에게 자신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사뭇 유쾌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내며 심지어 가해자가 누구인지 수사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보였다. 다른 사람의 욕심때문에 죽음을 당하지만 가해자를 밝혀낼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어버린 데르수의 죽음. 이 것이 문명의 이기심, 자만심이 아니고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왜 문명은 문명이라는 가면을 쓴 채 야만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작은 동물에도 하나의 인격으로, 하나의 생명체로 공정하게 대한 데르수같은 사람은 문명과는 동떨어진 인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 데르수의 모습을 보며 나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데르수는 비록 이 세상을 떠난지 100여년이 지났지만 그가 남긴 이야기와 생각거리는 아직까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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