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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1
가오싱젠 지음, 오수경 옮김 / 민음사 / 2002년 12월
평점 :
오지 않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버스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누군지도 알 수 없는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달라보이지 않았다. 언젠가는 꼭 올 것이라는 믿음, 그게 언제가 될 지는 알 수 없어도 그들은 헛된 희망이라도 해도 그 희망을 품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절망한다.
가오싱젠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처음 들어봤는데 알고보니 중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라고 한다. 책을 다 읽고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기에 비교적 편견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읽어갈 수 있었다. (사실 노벨 문학상 작품들은 왠지 가까이하기엔 너무 어렵게만 느껴진다.) 이 책은 가오싱젠의 희곡선으로 총 3편의 희곡이 실려있다. 첫번째 작품인 <버스정류장>은 앞서 언급한 바대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아니, 버스는 왔지만 그들에게 서지 않은 채 그냥 지나쳐버린다. 그들은 끊임없이 버스를 기다릴까, 아니면 그냥 걸어서 갈까를 고민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자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두번째 작품인 <독백>에서는 모노드라마로 배우가 내뱉는 독백을 통해 연극이란 무엇인지, 배우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세번째 작품인 <야인>에서는 어느 산골 마을에 살고있다는 야인때문에 몰려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생태학자, 지역 주민들 등의 인물들의 야인에 대한 생각, 그리고 산골 마을에 사는 아이인 세모와 야인의 우정, 생태학자의 개인적 이야기, 민요를 수집한 초등학교 교사의 이야기 등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교감이나 전통문화의 상실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극이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시간적 순서를 떠나 진행되기때문에 주제도 여러가지였다.)
내용적인 면에서 현대인들의 감정이나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면 극의 구조적인 면에서는 좀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내가 접한 것은 무대에 올려진 극이 아니고 활자로 쓰여진 극본이었기에 사실 이 연극이 무대에 올려지는 것을 그저 상상할 뿐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올려진 무대에서 이 극은 독특함으로 다가왔다. 특히나 <버스 정류장>에 등장하는 다성부의 진행은 읽는 순간도 혼란스러웠지만 정작 그 부분을 듣게 된다고 해도 꽤 혼란스러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짧게는 두세 개의 성부가, 많게는 일곱 개의 성부가 동시에 이야기를 하는 구조이다.) 극본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무대에 올려지기 위한 글이기때문에 마지막 부록에는 가오싱젠이 직접 쓴 '<버스정류장>공연에 대한 몇 가지 제안'과 '<야인>공연에 대한 설명과 제안'이 실려있다. 이 글을 통해서 작가가 어떤 점들을 주목했는지 무대에 올렸을 때 어떤 점들을 고려해야하는 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얇은 두께때문에 선뜻 집어든 책인데 읽는 내내 속도가 나지 않아 괴로웠다. 작가의 개성은 나름대로 뚜렷한 것 같지만 그 개성은 너무 강해서 오히려 독자들을 기죽게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한 번쯤 경험삼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읽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는 것이 좋을 듯. 얇다고 만만한 책이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