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번 산 고양이
사노 요코 글 / 그림 / 김난주 옮김 / 비룡소
 
 





백만 년이나 죽지 않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살았던 것이죠.

정말 멋진 얼룩 고양이였습니다.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었습니다.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임금님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임금님을 싫어했습니다.

임금님은 싸움 솜씨가 뛰어나 늘 전쟁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양이를 멋진 바구니에 담아 전쟁터에 데리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임금님은 고양이를 껴안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성의 정원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뱃사공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바다를 싫어했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배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고양이는 헤엄칠 줄을 몰랐습니다.

뱃사공이 서둘러 그물로 건져 올렸지만

고양이는 바닷물에 푹 젖은 채 죽어 있었습니다.

 

뱃사공은 고양이를 안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습니다.


 

그리고 머나 먼 항구 마을의 공원 나무 아래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도둑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도둑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도둑은 고양이와 함께 어두컴컴한 동네를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 다녔습니다.

도둑은 개가 있는 집에만 도둑질을 하러 들어갔습니다.

개가 고양이를 보고 짖는 동안에 도둑은 금고를 털었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개에게 물려 죽고 말았습니다.

 

도둑은 고양이를 껴안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좁다란 뜰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어린 여자 아이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아이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여자 아이는 고양이를 업기도 하고 꼭 껴안고 자기도 했습니다.

울 때는 고양이의 등에다 눈물을 닦았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여자 아이의 등에서 포대기 끈에 목이 졸려 죽고 말았습니다.

 

고양이를 안고 여자 아이는 온종일 울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를 뜰 나무 아래에다 묻었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누구의 고양이도 아니었습니다.

도둑고양이였던 것이죠.

고양이는 처음으로 자기만의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자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암고양이들은 모두들 그 고양이의 신부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커다란 생선을 선물하는 고양이

먹음직스러운 쥐를 갖다 주는 고양이

멋진 얼룩무늬를 핥아 주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나는 백만 번이나 죽어 봤다고. 새삼스럽게 이런 게 다 뭐야!"


 

고양이는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좋아했던 것이죠.

 

 

 





그런데 딱 한 마리, 고양이를 본 척도 하지 않는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난 백만 번이나 죽어 봤다고!"

 

"그러니."


 

고양이는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안 그렇겠어요, 자기 자신을 가장 좋아했으니까요.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난 백만 번이나..."

하고 말을 꺼냈다가 고양이는


 

"네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

라고 하얀 고양이에게 물었습니다.


 

"으응."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곁에 늘 붙어 있었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귀여운 새끼 고양이를 많이많이 낳았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들을

자기 자신보다 더 좋아할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새끼 고양이들이 자라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조금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와 함께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하얀 고양이는 고양이 곁에서 조용히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고양이는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또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울었습니다.

아침이 되고 또 밤이 되고, 어느 날 낮에 고양이는 울음을 그쳤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곁에서 조용히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는 고양이가 죽는 묘사가 많이 거슬렸습니다.
페이퍼에서는 소개하지 않았지만 바다에 빠진 고양이가 젖은 걸레같다던가
마술사의 고양이였을 때 상자 묘기를 부리다 반으로 쓱싹쓱싹 잘려 죽었다던가
여자 아이의 등에서 포대기 끈에 목이 졸려 죽었을 때 머리가 덜렁거린다는 묘사는
어두운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사랑' 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랑을 주지 않고 받기만 했던 고양이는 사랑의 기쁨을 몰랐기 때문에 삶의 기쁨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죽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는 환생을 거듭했습니다.
하얀 고양이를 만나기 전까지 고양이는 그저 백만 번이나 환생한 멋진 얼룩 고양이였죠.
하지만 마지막 생에서 고양이는 진정한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며 그 사랑이 사라지는 것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
아침이 되고 밤이 되도록 펑펑 울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습니다.
환생을 하고 싶지 않을만큼 사랑이 가득한 생을 살았던 것이죠.

살다보면 참 이기적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받는 걸로만 생각하고
상대방의 잘못은 두고두고 곱씹어도 내 잘못은 금세 잊어버리고...
원하는 만큼 사랑을 받을 땐 또 그만큼을 베푸는지...
이 책은 처음 읽을 때보다 두 번, 세 번 읽어가면서 점점 더 생각 거리들이 많아집니다.

사노 요코는 일본의 그림책 작가로 우리 나라에 소개된 그림책이 많습니다.
<100만 번 산 고양이>의 그림처럼 사노 요코의 그림은 어렸을 때 그렸던 그림들이 생각나는
단순하면서도 경쾌한 싸인펜의 터치와 휙휙 바른 듯한 물감이
여느 그림책과는 다른 인상을 줍니다.
또한 리듬감이 있는 글들이 많아 어린 아이들이 읽어도 좋고
등장 인물들의 심리 묘사나 생각할 거리들은 마니아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저는 보지 못했지만 <100만 번 산 고양이>는 '카우보이 비밥'에서
스파이크가 잠시 인용했다고도 하네요. ^^

 

출처 : http://paper.cyworld.com/boo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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