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마이클 베다드 글 / 바바라 쿠니 그림 / 김명수 옮김 / 비룡소
 
 





에밀리, 그녀는 이 햇살 속으로 걸어나갈 수 있을까요?

 


 





 

노란집 이층 왼쪽 방에는 '신비의 여인'이라고 불리는 아주머니가 살고 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거의 20년 동안 자기 집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낯선 사람이 찾아오면 숨어버리는 아주머니를 두고 사람들은 미쳤다고 말하지만

나에겐 그저 에밀리입니다.

 





 

우리가 이사온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우편 구멍으로 편지가 들어왔습니다.

거실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는 엄마가 편지를 뜯어봅니다.

납짝하게 말린 꽃 하나가 피아노 건반 위로 떨어집니다.

 

"저는 이 꽃과도 같답니다. 당신의 음악으로 제게 봄을 가져다 주세요."

 

나는 꽃을 가져다가 내 방 창턱 위에 놓아 둡니다.

그리고 우리집 보도를 따라, 길을 건너,

노란집의 울타리 안까지 이어진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나는 꽃에 물을 주며 아빠하고 온실에 있습니다.

노란집의 아주머니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에밀리 아주머니는 키가 작고 늘 흰 옷을 입고 있으며 시를 쓴다고 합니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노란집으로 갑니다.

방은 어두침침하고 딱딱한 느낌이고 히야신스의 짙은 냄새가 어지럽습니다.

그때, 계단 위로 얼른 사라지는 흰 빛이 보였습니다.

엄마는 에밀리 아주머니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합니다.

 

"지빠귀의 노래보다 아름다운 연주예요. 좀더 연주해 주세요. 벌써 봄 기운이 느껴지네요."

 




 

음악이 시작되자, 나는 조용히 살금살금 계단을 올랐습니다.

내 심장이 마치 작은 새의 심장처럼 빠르게 뛰었습니다.

층계참 꼭대기엔 온통 새하얀 여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분은 무릎 위에 놓인 종이 위로 연필을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장난꾸러기 꼬마야, 이리 오렴."

 

 




 

우리 옷은 둘 다 눈처럼 하얀색이었습니다.

"그게 시예요?"

 

"아니, 시는 바로 너란다. 이건 시가 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일 뿐이야."

 

나는 주머니에 있던 백합 알뿌리 두 개를 꺼내 그분의 무릎 위에 내려 놓았습니다.

"아주머니께 봄을 좀 가져왔어요. 땅에 심으면 예쁜 백합꽃으로 변할 거예요."

"그럼, 나도 너에게 뭔가를 줘야겠구나."

그분은 종이 위에 연필을 급히 움직여 나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자, 이걸 숨겨 두렴. 나도 네 선물을 숨겨 둘 거야. 아마 머지않아 둘 다 꽃이 필 게다."

 

 





 

곧 봄이 왔습니다. 백합 알 뿌리는 햇빛을 받고 비를 맞아 자라기 시작할 것입니다.

새싹들이 흙에서 돋아나고, 그 다음엔 백합꽃이 온통 새하얗게 필 것입니다.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고 많은 일들이 신비롭습니다.


 

 

 

 

 

 

백합꽃과도 같이 하얀... 백합꽃의 개화처럼 신비로운 여인, 에밀리.

그녀는 영미 문학을 통해 가장 위대한 여류 시인으로 평가되는 에밀리 디킨슨입니다.

그녀가 꼬마에게 준 시를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끝이 나는 것 같지만

다음 장을 넘기면 문 앞에 서 있던 에밀리가 꼭 문 밖으로 나간 것처럼

사라지고 없는 그림이 보입니다.

그녀의 영혼은 햇살 속으로 훨훨 날아간 걸까요...

빛처럼 하얀 옷을 입고 있던 그녀가 빛 속 어디엔가 머물러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에밀리 디킨슨은 1830년 매사추세츠 주의 암허스트에서 태어났습니다.

소녀 시절에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 사이에서 재치 있고 영리하며 호기심 많은 소녀로

평판이 나 있었는데 자라나면서 그녀는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을 잃어갔습니다.

그녀는 볼 일을 보러 잠시 집을 떠난 것 외에는 결코 일생 동안 집을 떠나지 않았으며

결혼도 하지 않았고 이웃에 있었던 오빠의 집에조차 가지 않았습니다.

에밀리는 낯선 사람들을 몹시 두려워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웃에 사는 아이들은 때때로 그녀가 일하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려고 부엌 주위로 오곤 했고

그녀는 종종 이웃 아이들에게 줄에 맨 바구니에 생강빵을 담아

2층 창문에서 내려 주곤 했습니다.

 

그녀는 일생 동안 시를 썼는데 그녀가 생을 마쳤을 때

그녀의 여동생은 그녀의 방 안 벗나무 책상에서 1,800편이나 되는 시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녀가 부활한 건 사후 69년이 되던 해,

1955년 비로소 그녀의 본격적인 시집이 하버드에서 출판되었고

그때부터 에밀리 디킨슨은 위대한 미국의 여류 시인으로 재조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위해 마이클 베다드와 바바라 쿠니는 에밀리의 생가를 직접 방문해서

피아노가 있는 거실에 앉아 보고 그녀가 글을 쓰던 방에도 가보고

그녀가 살던 방 창문 아래에 서 있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선지 에밀리가 보이진 않지만 그림 속 여기저기 숨어서 보고 있는 것만 같고

에밀리가 살던 먼 옛날의 이야기로 깊이 빠져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평생 고독했을 에밀리지만 그녀가 주인공인 이 책은 따뜻한 그림 덕분에

털옷을 입은 듯 폭신폭신한 느낌입니다.

세상은 그녀의 은둔 생활을 신기해하며 외로웠을 거라고 단정하지만

그녀의 옆집엔 천사가 살고 있으니 그녀는 단지 천국을 지키려던 게 아니었을까요...

 

 

 

 

『내가 만약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를

막을 수 있다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내가 만약 한 생명의 고통을 덜어 주고

기진맥진해서 떨어지는 울새 한 마리를

다시 둥지에 올려놓을 수 있다면

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사라지며 더욱 아름답게 - 낮이

어둠에 잠기듯 -

태양의 얼굴은 반쯤

훼방 놓으며 - 떠나지 않으며 - 멸망하며 -

 

다시 빛을 모으네, 죽어가는 친구처럼 -

찬란한 변신에 괴로운 채 -

오직 더욱 어두워지게 하면서

소멸하는 - 뚜렷한 - 얼굴로 - 』

 

- 에밀리 디킨슨의 시 중에서

(그녀의 시는 제목이 없어서 첫 행을 제목으로 하곤 합니다.)

 

 

출처 : http://paper.cyworld.com/boo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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