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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정태원 옮김 / 태동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묘하다. 이 책을 덮었을 때 가장 처음 들었던 느낌이었다. 자신의 인생이 백야(白夜)를 걷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하는 두 사람. 혹은 한 사람. 이 책은 유키호라는 한 여자와 관계하고 있는 사름들의 이야기이다.
상권부터 하권까지는 자그만치 19년이라는 시간차가 존재한다. 유키호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그리고 졸업 이후의 사회생활까지 다루고 있기때문에 어찌보면 이야기는 좀 지루할 수도 있다. (한 소녀의 성장담이라면 좀 식상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장장 20년이나 되는 세월의 이야기라면. 우리가 읽어온 대개의 성장담은 짜잔!하는 어떤 한 시절에 대한 이야기니까.) 하지만 이 책은 유키호가 성장하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녀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들의 이야기가 곁들여져있다. 요컨대, 그녀와 가까이하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겨나는 것. 진짜 미인이라는 평을 받는 유키호. 그녀는 늘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녀의 아름다움 뒤에 가려진 진실은 무엇인가. 그것을 20년이나 파헤쳐가는 형사 사사가키, 그리고 이야기의 또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료지. 운명의 수레바퀴는 이들에게 어떤 짐을 지운 것일까.
책 속에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사랑에 상처받은 사람, 가난에 상처받은 사람, 부모의 무관심에 상처받은 사람 등등. 그들은 가슴 속에 저마다의 상처를 가지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보단 그냥 흘러가게 그저 그렇게 냅둔다. 언제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읽을 때면 느끼는 것이지만 어떤 트릭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주목을 하면 더 흥미로운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소설에는 어떤 무릎을 치게하는 반전보다는 그저 드러나는 범인의 윤곽을 따라가고 그 범인의 처지를 이해(혹은 관찰)하는 데에 더 중점을 두는 듯하다.
책을 손에서 놓고서 묘하다라고 느낀 것은 사실 책의 어디에서도 유키호가 직접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없었기때문이다. 책은 유키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입을 빌려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또 다른 주인공인 료지 또한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야만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둘 다 자신들의 처지를 백야에 비유해 이야기한 적은 있지만.) 사사가키의 말처럼 문절망둥이와 대포새우의 관계같은 두 사람. 그 둘의 기묘하고도 긴 끈. 그 끈을 책을 덮고 나서도 쉽게 놓을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