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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위인전이라는 걸 읽는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 아이가 그 책 속의 위인처럼 크게 자라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일 수도 있겠고, 어떻게 보면 훌륭한 사람들의 행동을 지표로 바르게 커주길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땐 별 생각없이 "와. 대단하다! 나도 00처럼 살아야지!"라고 생각했던 위인전 속 인물들도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일반인과는 태어날 때부터 좀 다른 인간들처럼 느껴진다. 도무지 그들의 삶의 방식을 답습하기엔 내게 주어진 능력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들의 삶은 별나라 인간의 삶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일단 기본적으로 이 책은 세계사에 남은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나폴레옹, 레닌처럼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사람들뿐만 아니라 헨델, 괴테,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예술가들의 이야기 등을 다루고 있다. 책의 제목에서 보면 마치 그들이 어떤 광기를 가지고 삶을 살아갔던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내가 그들에게서 느낀 것은 '열정'과 '의지'였다.
우선 헨델의 경우에는 신체의 절반이 마비되버린다. 의사는 회복한다면 그것은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살겠다는 의지, 음악을 하겠다는 의지로 부활에 성공한다. 그리고 한 번의 시련끝에 '메시아'라는 걸작을 만들어낸다. 또 한 사람 사이러스는 미국과 영국을 케이블로 연결하려는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운다. 다행히 그의 계획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는 실현에 옮기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계가 문제가 있어서, 태풍이 몰아쳐서, 기껏 설치한 케이블이 이상이 생겨서, 그는 4번의 시도에서 결국 성공을 이뤄낸다. 이후 등장하는 남극에 영국기를 꽂기 위해 모험을 하는 스콧의 이야기도 굉장했다. 그는 아문센이 자신보다 앞서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실제로 아문센에게 1등자리를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모험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심지어 죽음을 앞두고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헨델과 사이러스, 그리고 스콧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때문에 각자가 도맡은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리라.
이런 열정뿐만 아니라 또 한 켠에 자리한 '우연'이라는 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 워털루 전쟁에서 긴박한 상황 속에서 나폴레옹에게 패배를 선사한 그루쉬의 단 1초의 생각. 그리고 로마제국의 멸망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열려있던 '케르카포르카'는 분명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우연이었다. 세계사가 그런 사소한 우연에 의해 좌우될 줄을 과연 그 누가 알았을까.
앞서 등장한 세계사 적으로 중요한 이야기들도 재미있었지만,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괴테처럼 문학의 거장들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저자의 시각에서 재구성한 이야기이니만큼 그의 시각이 녹아있긴 하지만 하나의 흥미로운 이야기로 읽어갈 수 있었다. 그들의 고뇌, 아픔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에 인간 대 인간으로의 그들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랄까.
전반적으로 쉽고 재미있게 읽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도 00처럼 살아보겠어!"라는 생각보다는 "나도 00의 의지를 본받아야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승부하는 그들의 모습. 그 자체가 참으로 멋지게 보였다. 어린 시절 읽어오던 '강요하는 교훈'이 아닌 '스며드는 교훈'을 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