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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좀 들어봐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흔히 어떤 이야기를 읽을 때, '이 사건 속에 등장하는 다른 사람은 어떤 관점으로 사건을 보고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든다. 싸움의 중재를 할 때는 양쪽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보고 결정해라. 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소설 속의 이야기는 편향되어 있고, 일방적인 호소에 그친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아쉬움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이 책은 균형적인 이해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지도 모른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잡게된 건 순전히 김영하때문이다. 가끔 그의 미니 홈피에 가서 부비작거리면서 놀다가 오곤 하는데, 그는 요새 자기가 재미있게 읽은 책 중에 한 권이라고 이 책을 소개했다.(다른 책은 '달려라 아비'였는데, 그 책도 무척 보고 싶다.) 그리고 며칠 뒤 도서관에 갔을 때, 이 책이 눈에 보였고, 그런 운명(?)에 나는 무조건적인 복종을 하는 착한 종처럼 그저 일이 흘러가는 대로 냅뒀다. 세상에, 뭐가 이렇담.
사실 책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스튜어트와 질리언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스튜어트에게는 어릴 때부터 절친하게 지낸 올리버라는 친구가 있다. 스튜어트와 올리브는 생김새도, 성격도 완전 딴판이지만 그들은 그럭저럭 그들의 우정을 지속적이고 깊이있게 유지해간다. (속으로는 비록 서로를 헐뜯을 지라도) 이 세 명의 남녀는 쿨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올리버는 스튜어트가 결혼하던 날 질리언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일은 꼬여버린다. 형식과 규범, 그리고 질서에 얽매여서 살고 있고 다소 재미는 없는 스튜어트, 좀 괴팍해보이고, 제대로 된 일자리도 가지지 못하지만, 위트가 넘치는 올리버. 질리언은 결국 스튜어트와 안녕을 고하고 올리버와 새로운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결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들. 블라블라.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인류의 오랜 물음에 대해서 이 책은 비아냥거리고, 되려 시장경제의 논리에 의해서 설명하려고 한다. 보호무역, 자유 경쟁, 사랑도 결국엔 돈으로 살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은행원인 스튜어트의 생각에서 많이 드러나고 있다.실제로, 질리언이 그를 떠난 후에 그는 수많은 린다와 킴, 그리고 켈리와 로렌과 린지를 만나며 돈을 지불하고 그녀들의 육체를 산다. 그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그저 섹스 뒤에 상대방이 당신을 달링이라고 부르게 만드는 시스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냉소는 비단 스튜어트뿐만 아니라 올리버도 동조하고 있는 것이고, 자신의 극단적인 행동에 대해서 질리언은 '내가 그런 행동을 하다니 이해할 수 없군'이라는 반응을 보일 뿐이다. 여튼간에 그들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그저 한순간의 신기루같은 존재일 뿐이다. 사랑이란 시장 속에서 그들의 소비는 과연 정당한 것이었을까? 그들은 올바른 방식으로 사랑을 획득한 것일까? 내 말 좀 들어보라고 날 붙잡고 이야기하는 그들. 그들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들은 정말 내게 사랑의 허상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