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2 - 세라복을 입은 연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백암 / 1994년 1월
절판


<쯔레즈레구사>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작품을 예로 들어도 유려한 문장이나 치밀한 심리 묘사는 읽을 당시에는 감탄스러워도 세월이 흐르고 나면 싸그리 잊혀지고, 아주 사소한 것일지는 모르겠으나 좌우지간 효율적인 종류의 일만을 부분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경향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는 것보다 나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74쪽

이따금 마누라가 '오늘ㅇ느 머리가 아파요'라고 하는데, 그런 말을 들어도 '어, 그래'라고밖에 대꾸할 길이 없다. 내게 그런 말은 반인반어가 '오늘은 아가미와 비늘이 닳아서 아파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미안한 생각이 들긴 하지만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육체적 통증이나 고통을 정확하게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82쪽

샤프 펜슬도 편리하니까 곧잘 사용하긴 하지만, 감촉이나 쓰는 맛으로 치자면 아주 평범한 연필 쪽이 작업에 더 적합하다.-94쪽

인생이란 본질적으로 불공평하고 불평등한 것이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노력 없이는 도저히 획득할 수 없는 것을 또 다른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아무런 노력 없이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은 불공평, 불평등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니다.-112쪽

나의 개인적인 기준으로 하자면, 두 번째로 읽었을 때가 첫번째보다 재미있는 작품은 좋은 소설이다. 하기야 두 번이나 읽고 싶다는 기분이 드는 소설은 그다지 없으니까, 다시 한 번 읽어 봐야지 하는 기분이 드는 것 만으로 이미 충분한지도 모르겠다.-177쪽

점이나 운수 같은 건 한 번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줄곧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고, 무언가 한가지에 집착하면 그 영역이 점점 확대되어 간다. 나는 성격상 그런 부담이 증폭되는 것을 참지 못하는지라, 다소 운이 안 좋은 일이라도 하고자 한 일은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다. 이건 성격이 강하냐 약하냐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사고 방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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