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콜필드 깨우기.

호밀밭의 파수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처음 이 책을 봤을 때가 아마 수능이 끝나고 난 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름대로 수능에 대한 불만에 휩싸여있었기 때문에, 그 때,이 책을 보면서 받은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거짓과 같은 세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콜필드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내가 하고픈 일들을 대신해주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그 때보다도 둥글둥글하게 변해버려, 콜필드가 지겨워해 마지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아니, 되어가고 있는 중인가?!)

  키는 훌쩍 크고, 머리에 새치가 있어 나이가 들어보이긴 하지만, 콜필드는 영락없는 사춘기 소년이다. 반항적인 면모나 안정되지 않은 마음, 비판적인 시각 등등.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게 바로 콜필드이다. 몇 번이나 퇴학을 당하고, 그나마 다니고 있던 펜시에서마저도 퇴학당했다. 그는 룸메이트와 싸우고, 어차피 짤린학교에서 며칠 더 머무르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는 훌쩍 뉴욕 시내로 온다. 그리곤 그 곳에서 전혀 낯선 사람과 소통을 하기도 하고, 그나마 말이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해보려고 노력을 하기도 하고, 술을 진탕 마시고 취하기도 하고, 말이 잘 통하는 동생 피비를 만나러 집에 몰래 들어가기도 한다. 그런 이틀 간의 여정을 겪으면서 그는 어제와는 또 다른 그가 된다.

  겉으로보기에는 불량스러워보이고, 반항아같지만, 아이들에게는 친절하게 대하거나, 모음을 하는 수녀들과 이야기하고는 그들에게 선뜻 돈을 건내기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즉, 그는 위선으로 가득찬 현실에 반항하고 있을 뿐, 순수함을 가진 사람에게는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가까이가기를 원한다. 슬프게도 그 때에 상대방은 콜필드를 피하려고 한다. 그는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려고 하지만, 세상이 되려 그를 외면해버리는 것이다.

  콜필드는 오빠는 대체 뭘 좋아하냐고 묻는 피비에게 자신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서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아이들을 보호해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가 지키려고 한 것은 단순히 아이들의 생명이 아니라, 그 아이들의 순수함이 아니었을까? 콜필드에게 조언을 해주거나, 콜필드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되려 우리는 콜필드를 보면서 세상의 때에 찌들어가는 우리를 반성해야하는게 아니었을까?

  그의 들으면서 때로는 연민의 감정이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그가 찾아간 선생님처럼 조언을 해주고 싶기도 하고, 함께 술을 나누면서 허위와 가식으로 가득찬 세상을 함께 욕하고 싶기도 했다. 우리 마음 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콜필드를 깨우는 일. 위험할 수는 있지만, 필요한 일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