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변화 - 상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7월
품절


뭐든지 가능한 것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굳이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하거나 유용해야만 선택하고 행동할 필요는 없는 게 아닐까?-10~1쪽

가난함과 부유함 사이에는 엄청나게 많은 단계가 있어. 그리고 가난한 정도도 얼마나 천차만별인 줄 아니? 너는 풍족하게 살아서, 한 달 수입 사백과 육백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몰라. 한 달 수입 천과 이천 사이에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어. 하지만 나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아. -15~6쪽

그 사람은 성스러운 의무를 수행하듯이 책을 읽었어. 무슨 책이든 일단 읽기 시작하면, 내용이 아무리 지루하거나 짜증스러워도 절대로 중도에서 그만두는 법이 없었지. 그 사람한테 독서는 신성한 일이었어. 사제들이 성서를 대하듯 인쇄된 글을 숭배했고 그림도 마찬가지였어. 그런 마음가짐으로 박물관에 가고 연극을 보고 연주회도 갔어. 그런 모든 것에 순수한 친근감을 가지고 있었지. 모든 영혼적인 것에 친근감을 가지고 있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내 친근감은 오로지 그 사람만을 향해 있었어.-20쪽

내 남편이 완전한 내 사람인 줄 알았는데, 흔히 말하듯이 남편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 영혼 구석구석의 모든 비밀까지 내 것인 줄만 알았는데, 사실은 전혀 내 사람이 아니라 철저하게 비밀을 간직한 낯선 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 마치 남편에게 전과 기록이나 변태적인 정열이 있는 사실을 알게 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그것은 내가 지난 세월 동안 가슴속에 품었던 남편의 이미지와 전혀 맞지 않았어. 남편이 어떤 특정한 점에서는 나와 가까운 사람이지만, 그 밖에는 길에서 우연히 만나 집에 데려온 그 작가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사람이라는 사실을 할게 된 거야.-26쪽

나는 다만 여자일 뿐이야. 그러니까 내가 사랑하는 남자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인디언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탐정이고 성녀이고 스파이가 될 수 있어. 그렇다고 부끄러워하지는 않아 -111쪽

정말 비극적인 상황에서 불현듯 고통과 절망을 넘어 이상하게 냉정하고 무심해질 때가 있어. 그래, 거의 즐거워지는 거야, 너도 그런 기분 아니?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의 장례식에서 '냉장고 문을 깜박 잊고 닫지 않았는데 손님 접대에 쓰려고 준비한 고기를 혹시 개가 먹어치우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이 별안간 떠오르는 것 같은... 다들 무덤가에 둘러서서 노래를 부르는데, 아주 침착하게 냉장고 문제에 골몰하는 거지. 우리 안에는 그런 면도 존재하기 때문이야. 우리는 그렇게 한없이 멀리 떨어져 있는 강변 사이에서 살고 있어.-146쪽

내가 지금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문제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경우에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거나 얼굴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기 마련이야. 모든 게 사라지지만 사랑만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어. 하지만 그것도 실생활에서는 별로 의미가 없어. -236쪽

조건없이 사랑받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네. 영웅정신은 아니더라도 용기가 필요한 법일세.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영심이 강하고 나약하고 두려움이 많아서 사랑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다네. 사랑을 주면서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맡기고 비밀을 털어놓으면서는 더욱 부끄러워하지. 인간은 원래 애정을 필요로 하며 애정없이는 살 수 없다는 슬픈 비밀, 나는 이것이 진실이라고 믿네.-257쪽

나는 이 세상 어떤 일에 대해서도 단언하지 않네. 다만 살면서 생각할 뿐일세.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일세. -288쪽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살인 광선에 맞먹는 힘으로 서로를 죽이네. 결코 만족할 줄 모르고 자신, 오로지 자신만이 모든 애정을 받아야 하는 줄 아네. 상대방의 모든 감정을 송두리째 받길 원하며,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의 진을 빨아먹고 대지와 어린 생명의 힘과 수분, 향기를 앗아가는 커다란 식물처럼 탐욕스럽게 주변의 생명력을 앗아가려 하네. 사랑은 엄청난 이기심일세.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고서 사랑의 강압적인 지배를 견디어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자네 주위를 한번 둘러보게나. 창문 너머로 집 안을 들여다보고 사람들의 눈을 직시하고 하소연을 들어보게나. 어디서나 똑같은 절망적인 긴장뿐일 걸세. 그 누구도 주변으로부터 받는 사랑의 요구를 참아내지 못하네. 기껏해야 한동안은 참아내고 타협을 하지만, 그러다 피곤해져서 결국 속병이 생기네. 위염, 당뇨벙, 심장 질환, 죽음.-292~3쪽

여자들은 쉽게 외로움에 시달리고 애정과 위로, 사랑을 그리워하네. -309쪽

고독을 넘어서서 마음과 영혼 속에 아직 기대하는 것이 있는 동안에는 그래도 견딜 만하고 살 만하다네. 썩 행복하거나 인간답지는 않지만 어쨋든 살아 있네. 저녁을 위해 아침에 시계의 태엽을 감는 것에도 의미가 있어. 그러고도 오랫동안 인간은 희망을 잃지 않기 때문일세. 절망, 도지하 견딜 수 없이 절망적으로 혼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렵지. 삶의 외로움에는 해결책이 없다는 인식을 참아내는 사람의 극히 소수에 불과하네. 대부분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서 허둥지둥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으로 도피하지. 그러나 이렇게 도피하듯 맺는 관계에는 순수한 열정이나 헌신적인 마음이 부족하네.-313~4쪽

삶은 뭔가 이루려고 하는 경우에 완벽하게 상황을 연출한다네.-33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