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11월에는
한스 에리히 노삭 지음, 김창활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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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책을 읽기 시작할 때에는 다른 분들이 써놓은 서평을 보거나, 이 책이 좋더라. 라는 입소문을 듣고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끔씩은 도서관에서 어슬렁 어슬렁거리다가 눈에 띄는 책을 읽기도 하는데, 이 책이 바로 그 경우였다. <늦어도 11월에는>이라는 제목 앞에서 왜 하필 그 많고 많은 달 중에 11월인지. 11월에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인지 궁금했기에 스리슬쩍 빌려와서 읽기 시작했다.

 부유한 사업가 집안의 며느리인 마리안네. 그녀는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욕망을 마음 한 구석에 안고 있지만, 그냥 그렇게 일상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여자이다. 어느 날 남편 대신 참석한 문학상의 시상식에서 만난 한 남자(수상자)로부터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선뜻 그를 따라 나선다. 어디로 가던, 어떤 일이 그녀 앞에 기다리고 있던 전혀 상관없이. 게다가 몰래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남편에게 말을 하고 나가는 그녀.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왔기에 그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다기보단 자신이 그 남자의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마리안네. 어느 날 그들을 방문한 시아버지와 대화를 한 뒤 그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일상 속에서 그녀는 그 남자를 그리워하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불안해하며 살아가고, 결국 그녀 앞에 다시 나타난 그를 따라 집을 또 다시 나선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새롭게 시작되기 전에 끝이 난다.

 늦어도 11월에는. 그때가 되면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고 사고 싶은 폭스바겐을 사서, 그걸 타고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을 함께 가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들. 너무도 평온한 일상(아무런 변화가 없는 그런 일상) 속에서 만난 사랑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버리고 모험을 시작하는 마리안네. 그녀의 섬세한, 그리고 예민한 내면을 작가는 잘 그려낸다. (남자 작가가 이렇게 여자의 마음을 잘 그려내면 솔직히 소름 끼친다.) 단순히 몇 시간 전에 만난 남자의 말 한마디에 무너져버리는 마리안네의 모습. 그녀에게 있어서 그 남자(묀켄)의 말은 그저 하나의 도화선이었을 뿐. 그 남자가 아니었더라도 그녀는 그런 자극이 있었으면 떠났으리라. 결혼이라는 굴레 속에서 그녀는 벗어나려고 했고, 행복을 찾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녀는 과연 행복을 찾을 수 있었을까. 그들은 죽음으로써 영원히 사랑을 유지시킬 수 있었을까. 너무도 애절한, 그리고 너무도 위험한, 그리고 너무도 안타까운 그런 책이었다. 나에게도 모든 것을 던지고 일상을 벗어나게 해줄 사람이 찾아 온다면 난 과연 마리안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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