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부르는 향기 - 과학으로 풀어보는 후각의 비밀
레이첼 허즈 지음, 장호연 옮김 / 뮤진트리 / 2013년 6월
품절


후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위해 후각 없는 삶이 어떠할지 한번 상상해보자. 후각을 잃어버린 후각상실증 환자에게는 모든 것이 바뀐다. 후각은 우리가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성적으로, 사회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후각을 잃으면 자신과 남들을 알아보는 능력에 장애가 생기고, 우리의 정서적 삶이 교란되며, 음식을 즐기지도 못하고 건강이 나빠질뿐더러 성욕마저 잃게 된다.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갖기에 최적인 짝을 알아보는 능력도 심각하게 손상된다. 그런데 냄새 맡는 능력을 잃는 것은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다. 후각을 잃고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여깅 대해 의사들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드물게 보일 뿐이다. -15쪽

냄새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감정 자체가 될 수도 있다. 내 연구에 따르면, 기억은 연상 작용을 통해 감정 자체로 변용되어 감정의 대리인이 되며,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는 이를 냄새-감정 조건화라 부른다. 실험실에서 우리는 좌절의 감정과 낯선 냄새를 결부시키면 나중에 그 냄새를 통해 좌절의 분위기를 조성하여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29~30쪽

냄새를 접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보이는 반응은 좋다 또는 나쁘다 하는 평가다. 좋은 냄새가 나면 가까이 접근하고 나쁜 냄새가 나면 피한다. 감정도 이와 비슷한 단순한 메시지를 전한다. 기쁨과 관심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감정은 다가가서 손으 내밀고 증식하라는 메시지를 말하고, 그래서 우리가 성공적으로 후손을 만들고 살아남게 한다. 분노나 두려움, 역겨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도망치건 싸우라는 메시지를 전해 우리의 생존을 돕는다. 결국 우리의 감정이 나타내는 접근과 회피의 규약은 냄새가 동물들에게 전하는 것과 같다. -32쪽

아이들이 같은 문화권에 사는 어른과 비슷한 냄새 선호를 나타내기 시작하는 것은 대략 여덟 살부터다. 유아들이 냄새에 대해 선천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자료는 전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신 유아나 아이가 어떤 냄새를 좋아한다면 그것은 경험 때문이라는 증거가 많다. 다시 말해서 학습이 냄새 선호를 만들며, 이런 학습은 심지어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다. -51쪽

냄새에 대해 우리가 원래부터 타고나는 반응이 있다면 그것은 신중함이다. 유아와 어린아이들은 주위의 어른들이 냄새를 좋다고 판단하든 혐오스럽다고 여기든 상관없이 낯선 냄새를 맡으면 하나같이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불확실한 것을 만날 때 불편해하는 것은 적응적인 가치가 있다. 이런 조심스러운 성향이 없었다면 선조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들 각자가 세상의 냄새를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것은 냄새에 대한 특정한 개인의 사연과 문화적 역사,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거기에 부여하는 성격과 의미 때문이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은 없다. 생각이 그런 냄새를 만드는 것이다. -70쪽

나는 정확성과 세밀함, 생생함이라는 면에서 볼 때는 냄새로 인한 기억이 보거나 듣거나 만지는 경험을 통해 유도된 기억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지만 그보다 낫지도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냄새가 자극한 기억은 한 가지 중요한 면에서 독보적이엇다. 감정 면에서 탁월했던 것이다. 감각 자극 중에서 냄새가 기억을 유도할 때 우리는 가장 많은 감정을 열거했고, 감정이 가장 강렬하다고 보고했으며, 마치 그 옛날 그 장소에 다시 돌아간 것만 같다고 했다. 또한 나는 향수 냄새로 기억이 자극될 때, 그저 향수 병을 만지거나 보거나 아니면 아무런 의미 없는 향수 냄새를 맡을 때보다 우리 뇌에서 감정을 관장하는 부위인 편도체가 한층 더 활발하게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따라서 감정이 유도하는 기억은 다른 유형의 기억 경험과 분명히 다르다. 우리의 마음과 뇌에 독보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니 말이다. -85쪽

향기가 날조될 수 있고 그 향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냄새가 없는데도 누군가가 냄새에 대해 하는 말을 우리가 믿는다는 사실은 놀랍게 보인다. 다른 감각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지금 방 안에 흰 코끼리가 있다고 말한다고 해서 갑자기 그것이 여러분 눈에 보일 리가 없다. 하지만 거짓 향기에는 놀라울 만큼 쉽게 속아 넘어간다. -115~6쪽

유전자와 체취, 매력의 관계는 왕성한 생산력과 건강한 아이라는 생물학적 의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함의를 가지며, 현대 사회에는 이 두 가지가 서로 뒤엉켜 있다. 먼저, 남자들은 향수를 뿌림으로써 '거짓 광고'를 할 수 있다. 그리고 피임약을 복용한 여자들은 자신과 유전적으로 비슷한, 그래서 물학적으로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 남자의 냄새를 선호한다. -154쪽

자연과 인공의 구별이 얼마나 허구인지 보여주기 위해 나는 모종의 실험을 했다. 참가자들에게 다양한 냄새를 맡게 한 다음 자연 향인지 인공 향인지 추측하게 하거나, 아니면 실제가 어떻든 간에 자연 향이라고 또는 인공 향이라고 말해주었다. 자신이 그렇게 생각했거나 그렇게 들었거나 상관없이, 자연 향이라고 믿은 사람은 같은 향을 인공 향이라고 생각할 때보다 더 좋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게다가 어떤 향기를 두고 인공 향인지 자연 향인지 추측하게 하자 이들이 알아맞힐 확률은 동전던지기보다 나을 게 없었다. 이렇듯 자연과 인공의 구별은 우리의 마음속, 우리의 미적 판단에 달린 문제다. -214쪽

후각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 그 소중함을 미처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다. 나는 사라들이 후각을 잃어 벼저린 교훈을 얻지 않고도 이 책을 통해 후각의 소중함을 깨닫고 여기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후각이 위의 인간다움에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성적으로 사회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냄새의 경험을 통해 우리의 삶이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풍부해짐을 알게 된다면 삶의 의미도 그만큼 깊어질 것이다. 우리는 냄새를 통해 스스로를 알고 남들과의 교류를 활발히 나눈다. 후각은 학습과 기억력의 증진에 도움을 주며 우리의 행동을 바꾼다. 우리는 후각을 통해 강렬한 정서적 삶을 영위하고, 기억을 되새기며, 정신 건강을 누리고, 열정을 불사른다. 후각은 심지어 우리가 누구와 함께 아이를 갖는 것이 좋은가 하는 생물학적 조언도 해준다. 멋진 용모의 사람이 냄새 때문에 매력 없는 사람으로 전락하기도 하고, 반대로 평범한 사람이 냄새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후각은 실로 욕망의 감각이다. -25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