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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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와서는, 선장이 그렇게 겁에 질려 버리면서부터 내 인생이 조금씩 달라져 왔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결정된 인생은 없다는 것을, 모든 이야기는 실상 우연의 연속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우연히 경험했던 것들이 사실은 필연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17~8쪽

내가 왜 나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왜 이것들을 택해 썼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쩌며 잃어버린 그 아름다운 날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78쪽

어쩌면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이러한 사고방식과 그의 인생을 나의 것으로 만들 거라는 사실을 내가 미리 감지했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다 쓰라고 용기를 주었다. 그가 글을 쓰는 스타일과 모습에는 내가 좋아하고 또 배우고 싶었던 무언가가 있었다.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인생을 훗날 온전히 받아들인 만큼 좋아해야 한다. 물론 나는 지금 이 인생을 좋아한다. -81쪽

거울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모습이 보이듯,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본질을 볼 수 있다고. -84쪽

우리는 성을 바라보았다. 성은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깃발이 걸린 탑에 지는 해의 희미한 붉은빛이 반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성은 하얀 색이었다. 새하앟고 아름다웠다. 어쩐지 이렇게 아름답고 도달하지 못할 존재는 꿈에서만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꿈에서 어두운 숲 속의 구불거리는 길로, 언덕 위에 있는 밝고 하얀 건물에 도달하기 위해서 황급히 뛰어가면 그곳에 참가하고 싶은 축제, 놓치고 싶지 않은 행복이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곧 끝날 거라고 생각했던 길은 도저히 끝이 나지 않는다. 어두운 숲과 산자락 사이에 있는 평지에는 늘 넘쳐나곤 하는 시냇물이 만들어 놓은 더러운 늪이 있다는 것을, 그 늪을 넘은 보병과 포병의 엄호에도 불구하고 비탈길을 오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한 길을 생각했다. -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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