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구판절판


마리 짱. 우리가 서 있는 땅이란 건, 탄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소한 일 하나에도 '꽝'하고 저 밑창까지 꺼져버리거든. 그리고 한 번 꺼지고 나면, 그걸로 끝장이야. 두 번 다시 본래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지. 그 후엔 꺼져버린 땅 밑의 어두컴컴한 세계에서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야. -219~220쪽

시간을 가지고, 자기의 세계 같은 것을 조금씩 만들어왔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런 세계에 혼자 있으면, 어느 정도 안도감이 생기거든요. 하지만 그런 세계를 일부러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 자체가, 나 자신이 상처받기 쉬운 약한 인간이라는 뜻 아닐까요? 그리고 그 세계란 것도 세상의 눈으로 보면, 아주 작고 보잘 것없는 세계에 불과하잖아요. 골판지 상자로 만든 집처럼,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어딘가로 날아가 버릴 듯한...... -231쪽

앞으로 마리 짱이 어엿하게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지금보다 많이 가질 수 있게 될거야. 어설픈 짓은 하면 안 돼. 세상에는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둘이서만 할 수 있는 일도 있어. 그걸 잘 조합시키는 것이 중요해. -232쪽

인간이란 결국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그 기억이 현실적으로 중요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지. 단지 연료일 뿐이야. 신문의 광고 전단지나, 철학책이나, 에로틱한 잡지 화보나, 만 엔짜리 지폐 다발이나, 불에 태울 때면 모두 똑같은 종이조각일 뿐이지. 불이 '오, 이건 칸트로군'이라든가. '이건 요미우리신문의 석간이군'이라든가, 또는 '야, 이 여자 젖통 하나 멋있네'라든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타고 있는 건 아니잖아. 불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어떤 것이든 모두 종잇조각에 불과해. 그것과 마찬가지야. 중요한 기억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기억도, 전혀 쓸모 없는 기억도, 구별할 수도 차별할 수도 없는 그저 연료일 뿐이지.-235쪽

우리들의 인생은 단순히 밝은가, 어두운가 하는 것으로 쉽게 구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지. 어둠과 밝음 사이에는 그늘이라는 중간지대가 있잖아. 그 그늘의 단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 건전한 지성이야. 그리고 건전한 지성을 획득하려면, 그 나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어?-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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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맘 2005-10-14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윤회를 믿어요 마리처럼 정신이 강하지 못하거든요,,
이 책을 보는내내 마리를 부러워했어요
(특히, 다카하시같은 남자친구를 너무 갖고싶어요!!)

제가 에리언니와 비슷하기 때문에 마리를 부러워 했을꺼예요,,
(에리언니처럼 얼굴이 모델처럼 이쁘지도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만)
내가 뭘 진정 원하는지 모른채 이 곳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슬퍼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