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가을 웹서핑을 하다가 하루키의 25년을 기념하는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었다. 그 때부터 '대체 우리나라에는 언제 발간이 된단말인가!'하면서 오매불망 이 책이 나오기만을 기다렸고, 본디 신간의 경우에는 도서관에서 빌려본다는 나름의 원칙을 깨가면서까지 책을 사서 시험이 24시간도 남지 않은 그 시점에 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책을 받아들고는 너무도 판타지소설과 같은 표지에 한 번 실망을 하고, 얇다란 두께에 다시 한 번 실망을 하긴 했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마리'는 빼어나게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나름의 매력과 지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존재이다. 한편, 그녀의 언니인 '에리'는 이름 한 글자만 차이가 날 뿐이지만, 빼어나게 예쁜 외양을 가진 존재이다. 외양적으로도 너무 다른 이 자매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멀리 떨어져있는 존재인 것 같다. 같은 집에서 살고 있을 뿐, 둘은 서로 마음을 터놓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동떨어진 존재이다. 어느 날, 에리는 이제부터 잠을 자겠다고 하고 두 달동안 마치 죽은 것처럼 잠만 자는 생활을 하고, 마리는 그 때문에 혼란을 겪고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심야의 레스토랑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예전에 본 적이 있는 언니의 고등학교 동창인 다카하시를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러브호텔인 '알파빌'에서 한 중국인 매춘부를 도와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밤의 시간 속에서 그녀는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는 화자의 시점이었다. 3인칭으로 나타나고 있는 화자는 '우리'라는 말을 통해 화자와 독자가 같은 시점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해주는 한 편, 또 어느 순간에 가서는 독자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는 존재가 되어서 나타나고 있었다. 이러한 시점을 하루키의 소설에서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선 것이어서, 우선 이 점에서 처음에는 약간의 부적응현상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인지 몰라도 문장이 너무 딱딱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나름대로의 낯선 느낌을 받았다. 이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화자와 같은 시점으로 사물을 보고 있기 때문에 느껴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유기적으로 문장이 연결되어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편적으로 여기엔 뭐가 있다. 지금은 이런 상태이다. 와 같은 나열이 나오고 있음은 뭔가 좀 어색한 감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용의 흐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아서 어색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 기대가 컸던 탓인지 어느 정도 실망을 하기는 했지만, 하루키와 같은 인물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또 그의 작품을 접할 수 있음에, 그리고 이 작품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에 스스로 위로 하고 있는 중이다.

 7시간동안 마리가 겪는 일들과 그녀의 깨달음. 그리고 에리가 잠을 자면서 겪고 있는 일들. 왕년의 레슬링 선수의 러브호텔 매니저 이야기, 음악을 하는 법대생 다카하시의 가족사와 진로 문제, 손님한테 맞아 쓰러진 중국인 매춘부와 그녀를 데리고 있는 중국인 조직, 중국인 매춘부를 폭행하고 그녀의 옷가지를 비롯한 모든 물건을 가져가버린 회사원, 누군가에게 쫓기고 러브호텔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들, 이들은 서로 저마다의 인생을 살고 있고, 저마다의 갈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커다란 갈등의 양상은 없는 것처럼 보이고, 또 갈등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에 따른 뚜렷한 해결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책을 덮고도 한참을 등장 인물들에 대해서 상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여튼간에, 아쉬운 면도 있기는 했지만, 만족스러운 면도 있는 작품이었다. 하루키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더불어 책 속에 등장하고 있는 음악을 책의 끝에 실어놓았는데, 한 번 들어봐야겠다.

+그러고보니 이번에는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서 스파게티와 맥주의 유혹을 당하지 않았다. 그저 참치 샌드위치와 계란말이의 유혹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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