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지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배경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교류를 나눈 후에 돌아가거나 혹은 새로운 여행길에 오르는 역처럼 서점은 책이 마지막으로 당도하는 종착역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시발역이기도 했다. -6쪽
클릭 한 번으로 책은 살 수 있겠지만 그곳에 이야기는 없다. 서점으로 향하는 길목의 풍경, 서점을 가득 채운 공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배려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사소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는 편리하고 효율적인 삶을 탐욕스럽게 추구하지만 결코 그것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점을 찾는지 모른다. -7쪽
책은 물체로서 손에 쥘 수 있는 것으로 물리적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한계는 있지만, 다시 책을 펼쳐 들면 무한한 시간과 공간이 펼쳐지는 특성에 사람들은 매혹되고 만다. 그 한 권에 실려 있을 그 무언가에 대한 일종의 구체적인 기대감 때문에 사람들은 책을 찾는다. 시간적인 면에서 생각해 보자. 제한된 시간 속에서 사는 독자는 책 안에 흐르는 무한한 시간 속으로 자신이 해방되는 감동을 맛볼 것이다. 실제로 책장을 펼쳐 읽다 보면 자신의 인생이 정말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농밀한 시간이 그 속에 흐르고 있다. 그 간극, 유한과 무한이 양립하는 그 부분이 바로 책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 -후지모토 소우-42쪽
도서관은 장대한 우주체계를 연상하게 하지만 서점은 우주이자 동시에 속세다. 사고파는 사람들의 마음과 취향과 욕망이 공명하며 하나의 공간을 이루고, 더 나아가 책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서점이라는 공간이 갖는 지극히 인간적인 맛이 그래서이다. -히라마츠 요코-77쪽
아름다운 서점에 대해 묻자, 린은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볼 테니 기다리세요"라는 말을 남기고는 다른 이들의 의견을 묻기 시작했다. 아그네스는 "세심한 배려, 사람과 책을 위한 공간 구성, 유연한 경영, 세계정세와 지역의 영향에 대한 견해를 갖춘 서점 만들기"라고 했고, 레이머는 "단순한 판매원이 아닌 전문 지식을 갖춘 북러버가 일하는 곳"이라고 했다. 캐린은 "다방면의 책이 아름답게 진열되어 있어서, 전 세계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장소"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린이 자신의 철학을 말했다. "아름다운 서점이란 독자가 그 책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고 싶을 만큼 엄선한 책을 진열해야 해요. 열정과 지식을 겸비한 안내원들이 자신을 찾아주기를 기다리는 책과 독자와의 만남을 돕는, 언제나 생동감 넘치는 곳이 바로 아름다운 서점이죠"라고 했다. -108쪽
"저희 북디자이너의 일이란 그런 외견상 아무런 특색 없고 밋밋한 스토리에 형상을 입하는 것입니다. 서점에서 책을 손에 집어 드는 순간, 또렷한 첫인상을 새길 수 있게끔 '얼굴'을 디자인해 주는 셈이죠"라고 칩 키드는 설명했다. 뉴욕에서 25년 이상 서적 디자인 작업을 해온 그. "중요한 것은 책 그 자체의 '특별함'을 살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동시에 잠재적인 독자, 다시 말해 서점에 발걸음을 한 사람이 읽고 싶은 마음에 손을 저절로 뻗을 수 있게끔 인상적인 표지를 디자인하는 일이죠. 흔한 일반론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속임수나 마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123쪽
그렇다면 그는 어떤 과정을 거치며 스토리에 형상을 만드는 것일까? "디자인의 영감은 텍스트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단순해 보여도 이것이 제 일의 가장 복잡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원고를 읽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가 어떤 얼굴을 원하는지 그 대답이 있는 곳으로 텍스트가 저를 이끌어줍니다. 뛰어난 북디자이너는 텍스트 안에 숨겨진 목소리를 충실하게 찾아 듣는 통역사이자, 그 목소리를 디자인이라는 다른 '언어'로 옮기는 번역가여야 합니다." -123쪽
확실히 그(테세우스 찬)가 디자인한 책은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여행'이 되어, 기억에 남는 '경탄'과 '발견'을 제공하는 장치가 되는 일도 적지 않다. "훌륭한 북디자인이란 레이아웃이나 이미지, 타이포그래피뿐 아니라, 판형과 구성, 그리고 인쇄 품질까지 다양한 요소를 통해 콘텐츠에 내포되어 있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하는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예기하지 못했던 장소에서 영감을 얻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중장비, 화학실험, 재봉처럼 언뜻 보기에 서적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들이 새로운 디자인을 고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예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책은 서점 같은 공적인 공간에서도 그 책을 손에 쥔 사람의 모든 신경을 매혹하는 힘을 가진 작품으로 승화하는 겁니다." -125쪽
서점은 여행하는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장소이다. 출발하기 전에도 그렇고 여행지에서,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그렇다. 떠나기 전에는 지도나 여행안내 책자만 눈에 들어오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소설과 평론까지 읽고 싶어진다. 여행지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독서로 정리하고 싶고, 그 독서를 통해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된다. 이 두 가지의 경험은 실제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나눌 수가 없다. 시작은 끝의 일부이며 끝은 시작에 포함되어 있다.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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