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털 같은 나날
류진운 지음, 김영철 옮김 / 소나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워낙 책이 좋다는 호평을 들어서 어떤 책인가 싶어서 읽게 된 이 책에는 총 3편의 중편소설이 실려 있다. <닭털 같은 나날>, <관리들 만세>, <1942년을 돌아보다>라는 제목을 가진 이 3편의 이야기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어떤 작품이 가장 좋은지를 판단할 수 없게끔 만들어줬다.

 첫 번째로 등장한 작품이자, 표제작이기도 한 <닭털 같은 나날>에서는 결코 닭털처럼 가볍지 않은 그런 이야기가 등장한다. 두부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며 가난뱅이도 더럽게 많다고 투덜투덜대는 모습이나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도움이 될만한 사람에게 선물을 보내려고 하는 모습이나, 그의 집을 찾아온 은사를 제대로 대접하지도 못하고, 후에 그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는 임씨는 전형적인 소시민이다. 대학까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그런 생활을 해야함에 자연스레 적응해가는 임씨부부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왠지 가여워보이기도 하고, '그런게 사람 사는거지.'라는 생각도 들게된다. 그래 그런거지 뭐. (참고로 원제인 一地鷄毛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른데, 어떤 사람은 닭을 잡은 뒤에 닭의 피와 털이 난무한 곳을 가리키는 말로 비참한 현실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하며, 혼란스럽고 골치 아픈 상황을 묘사한 말이라고도 하는데, 허섭쓰레기같은 일상이라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 작품인 <관리들 만세>에서는 앞의 이야기에서의 소시민의 삶이 아닌 국가 행정 기구의 사무실에 속한 관리들의 삶이 나타나고 있다. 새로이 개편되는 조직의 체계 속에서 각자 자신의 지위를 위협받은 8명의 관리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각종 지모와 술수를 쓴다는 이야기이다. 8명의 관리들은 제각각 성격은 다르고, 그들의 이해관계도 다르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때로는 손을 잡고, 때로는 등을 돌리며 치열한 생존 게임을 한다. 개개인의 이기적인 모습을 관리들을 통해서 볼 수 있을뿐더러, 각 층마다 청소의 정도를 달리하는(고위층이 있는 층을 가장 깨끗하게 청소하는) 청소부에게서는 삶에 대한 비소와 함께 요령껏 사는 삶, 권력에 순응하는 삶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세 번째 작품인 <1942년을 회상하며>는 소설이라기보다는 르포같은 느낌을 주는 글이다. 1942년에 작가의 고향(하남성)에서 있었던 대기근의 참상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50년 뒤에 그 일을 겪은 이들을 찾아가 그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자료를 수집하는 모습을 보인다. 먹을 것이 없어서 사람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상황에까지 처했던 1942년의 대기근. 그 일을 보고받고도 가벼이 넘기고, 묵인한 장개석에 대한 비판인 듯 하면서도 비판이지 않은 듯한 이야기는 참으로 담담하게 이어진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굶주림에 허덕이는 가난한 인민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답답해지면서 숙연한 느낌까지 갖게 해주었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 지경까지 몰아넣었단 말인가.

 이 세 가지 이야기들은 모두 힘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갖은 방법으로 그 생활을 벗어나려고 하지만, 마치 우리에 갖힌 동물처럼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안에서 모든 것을 감수하며 지낸다. 물론, 그들의 삶 속에서 전환기라고 할 만한 사건이 일어나고는 있지만 그것은 우리 밖으로 벗어나는 것이 아닌, 단지 다른 우리로의 이동일 뿐이다.

 책의 뒷 표지에 쓰인 '류진운, 20세기 20대 중국작가'라는 말이나, '닭털 같은 나날, 20세기 100대 세계 명작>이라는 말이 빈 말이 아님을 이 책을 읽어보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음 한 켠이 아파온다. 나 역시 힘 없는 소시민일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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