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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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안에 민음사에서 나오는 세계문학전집을 독파하고말겠다는 나름의 계획아래, 전집 순서대로 볼까하다가 평점이 좋은 작품부터 접하는 게 좋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단순히 평점만 보고 접한 책이다. 작가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고, 이 책이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채. 마치 책 속의 주인공이 모래 구덩이 속에 갇혀버리듯이 그렇게 나는 이 책 속에 갇혀버렸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곤충채집을 위해 휴가를 얻어 모래로 뒤덮인 곳으로 가게 되고, 그 곳에서 마치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이유를 알지 못하고 15년 간 군만두만 먹으면서 갇혀버리듯이, 이유도 모른 채, 잡혀버리고 만다. 한 시라도 모래를 파내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는 모래로 뒤덮인 마을. 그는 그가 묵고 있는 모래때문에 나무가 썩어가는 집을, 그리고 그 집의 주인인 묘한 느낌의 여자를, 모래의 껄끄러움만 가득한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한다. 하지만, 모래 산을 올라갈 때, 자꾸 미끌어지는 것처럼, 그는 점차 점차, 그는 도망가지 못하고, 결국은 마음 한 구석에 언젠가 탈출하겠다는 <희망>의 조각만을 남겨놓은 채, 그렇게 적응해간다.

 마치 이 책 속에서 주인공이 당하게 되는 일은 시지푸스가 끊임없이 바위를 움직여야 하는 일과도 같다. 그는 끊임없이 모래를 파내야 하는 것이다. 파내고, 또 파내고, 하지만 모래는 줄어들지 않고, 늘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모래 특유의 껄끄러운 느낌이 머리 속에 남아서 어느새 책을 놓는 그 순간에 목이 말라왔다. 그래서 마신 물에서 나는 개운함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내 목에 모래가 걸린 것처럼 그렇게 그렇게 계속 껄끄러움이 남아 있었다.

 이 책은 결국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매혹적으로.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처럼 이 책에 대해 알지 못하고 접해도 좋다. 읽다보면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을테니까. 벗어날 수 없는 모래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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