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의 레몬에서 시작되었다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7월
품절


기억들은 더 많은 나이를 먹고 추억이 된다. 그리고 추억들은 하나의 마을을 이루기도 한다. -15쪽

당신이 나의 추억들을 가지고 갔다. 당신이 나의 꿈을 가지고 갔다. 당신이 나의 운명을 가지고 갔다. 당신이 나의 별들과 달과 해를 가지고 갔다. 당신이 나의 무지개와 나의 꽃들과 나의 바다를 가지고 갔다. 당신이 나의 자유를 가지고 갔다. 당신이 나의 사랑을 가지고 갔다. 한번도 나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58쪽

오랜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이 슬픔도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결국 내가 영원히 소유하고 싶었던 것은 처음부터 이 세상에 없었던 것이 될 것이다.-59쪽

당신은 운명을 믿는가. 나는 운명을 믿는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저마다의 운명을 타고난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다른 운명이 있고, 모든 생명과 무생물, 물체와 기체와 액체들, 관념과 수많은 단어들조차 어떤 운명이라는 것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혹은 존재하지 않는 모든 것들은 세상으로 내려오기 전에, <운명의 백화점>같은 곳에 들러서, 자신의 운명을 하나씩 손에 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어떤 운명을 손에 쥐느냐는 운명이 아니고 우연이지만, 운명을 쥐는 바로 그 순간부터 그들은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필연에 처해지는 것이다.-185쪽

존재하는 혹은 존재하지 않는 모든 사물들은 각자 운명을 타고나며, 그들이 서로 만날 때 다른 운명들도 서로 만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운명은 변화하는 것이다. -185쪽

이 세상에서의 사랑일나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눈 앞의 풍경들이 바뀌고 모든 일상이 변화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낯선 선택을 강요받고, 그 선택에 따라 세계는 어느 한쪽으로만 열린다. 당신을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길을 가르쳐주는 지도도 없다. 가슴은 쉬지 않고 뛰고 기쁨은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리고 그런 여행이란,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언젠가 끝이 난다. 여행이 끝나면 피로함과 추억만 남는다. 사랑은 그렇게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이제는 떠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느 순간 또다시 짐을 꾸리고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186쪽

사랑은 축제 같은 것, 어느 날 우연히 이루어진 소풍과 같은 것, 한껏 흥이 올랐다가 저절로 사라져버린다. 사라지고 나면 그것으로 그뿐. 처음부터 사랑은 그렇게 사람과 상관없이 흘러가는 것이다.-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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