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림
성석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1월
품절


노름이란 말이 논다, 놀이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건 다 알 거다. 남들 다 놀이를 할 때 혼자 칼을 갈면 한두 사람의 등을 찌르거나 뒤통수를 칠 수는 있다. 하지만 진정한 노름꾼은 남이 놀 때 같이 놀고 남이 칼을 갈면 같이 갈아준다. 세상에 리듬을 맞춘다, 이게 노는 것이고 아름답게 사는 것이다. 노름에도 도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드라마가 있다. 그게 현실적인 정치나 비지니스의 그것보다 나을 수 있다. 요즘의 정치가들, 사업가들, 마피아들 너무 놀 줄 모른다. 숨을 들이쉴 줄만 알고 뱉을 줄 모른다. 먹을 줄만 알고 쌀 줄은 모른다. 그래서 차곡차곡 모으면 많이 딸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죽는다. 숨이 막히고 뚱뚱해져서 추하게 죽는다.-23~4쪽

나는 일등만 하는 친구를 부러워한 적은 없어. 우리 동창 중에는 삼 년 내내 아버지 차로 등교한 군수 아들도 있었고 또 삼년 내내 일등만 하다가 대학 가서 곧바로 고시 패스한 놈도 있지. 나는 그런 놈들을 부러워하지 않았더. 그놈들은 그야말로 별종이야. 나도 별종은 별종이었는데, 안 조은 쪽으로 별종이지. 반에서 등록금도 제일 늦게 낼 정도로 가난하고 공부는 꼴찌고 사고쳐서 학생과에 제일 많이 불려가는 게 나였어. 그런데 그 놈들은 나를 별종 보듯 하면서 저희가 별종인지는 몰라. 나는 네가 부러웠어. 평범해 보이는 게 그렇게 부럽더라구.-92~3쪽

죽도록 좋아한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그걸 기본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이 정상에 오른다. 재주가 없어도 부지런한 사람은 자기 몫은 하게 되어 있다. 재주가 있어도 게으르면 소성(小成)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대성할 수는 없다. -104~5쪽

일설에 의하면 사람은 눈으로 처음 본 것이나 처음 들은 것은 잊을 수 있지만 처음 맡는 냄새에 대한 기억은 일생을 가지고 간다고 한다.-223~4쪽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어처구니가 없다고? 아니다, 아니야. 어처구니는 있다.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실낙원은 낙원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실연은 사랑이 있었기에 성립한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것은 있었기에 가능한 말이다. 어처구니는 언젠가 있었다. -2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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