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림
성석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1월
평점 :
품절


 예전에 읽은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이후로 푸욱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한국 작가. 인간에 대한 통찰을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낼 수 있는 것은 분명 그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리라. 여튼간에 이 책속에는 총 8개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각각의 이야기 속에는 여전히 인간에 대한 인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좀 진지한 모습이라고 할까?

 각각의 작품에 대한 느낌을 적어보자면, <꽃피우는 시간-노름하는 인간>에서는 화자가 K라는 도시에 놀러갔다가 세계 최고의 도박사 피스톨 송 선생의 강연을 우연찮게 듣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성석제는 인간 세상을 도박판에 비유하고 있으며, 더불어 거짓이 팽배해있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하지만 날은 숨이고 있는) 비판을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이야기인 <해방-술 마시는 인간>에서는 주인공이 몇 명의 사내와 화가라는 한 여자와 술을 마시게 되고, 화가라는 여자가 갑자기 울자 그녀가 왜 우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함께 이야기한 것들을 다시 곱씹어보면서 진행되는 형식의 글로, 과거 교사 시절에 만난 '재떨이'라는 여자와의 회상을 보여주고 있다. 술을 일상의 해방의 도구로 인식하는 점은 익히 보아온 이야기이긴 하지만,어찌되었건 술을 통해서라도 쳇바퀴도는 것 같은 일상 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우리네가 술을 마시는 이유가 아닐까? 그건 그렇고 대체 그녀는 왜 울었던 것일까?

 세번째 이야기인 <소설 쓰는 인간>에서는 한 제비족의 이야기가 나타난다. 우리 세계를 춤, 춤방, 남자, 여자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그의 이야기는 춤에 홀랑 빠져서 결국 제비. 그것도 왕제비가 되지만, 꽃뱀에게 당하고 춤 인생을 결국엔 끝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어느 왕제비의 인생-내 운명을 바꾼 호두알 두 쪽.'이라는 제목의 소설로 쓰고자 한다.

 네번째 이야기인 <홀림>에서의 화자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분열, 복제된 다수로 만들어 각각의 상황에 맞춰가면서 홀린 듯이 살아간 인생을 보여주며 있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쳐다보는 것으로 그려지는 풍경은 뭐랄까. 나른한 오후같은 느낌이 들게 해주었다. 더불어, 이 이야기는 작가의 스스로의 자전적인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다섯번째 이야기인 <협죽도 그늘 아래>는 한 여자의 기구한 사연을 보여주고 있다.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전쟁터에 끌려간 남편. 그리고 그의 돌아오겠다는 말에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는 여자의 모습. "한 여자가 앉아 있다. 가시리로 가는 길목, 협죽도 그늘 아래."라는 반복되는 시작점을 통해서 왠지 시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고, 더불어 그녀의 슬픔이 아스란히 느껴져 왠지 서글퍼졌다.

 여섯번째 이야기인 <붐빔과 텅 빔>은 전혀 다른 두 형제의 삶을 대비하여 보여주면서, 두 형제의 인생을 그려주고 있다. 앞서간 형의 노선을 밟아가는 아우의 이야기를 통해 공허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살아온 방식은 전혀 다르고, 그 끝도 다른 두 형제이지만, 하나의 삶을 살고 있는 형제의 이야기. 왠지 그러고보면 우리네 인생도 결국은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야기였다.

 일곱번째 이야기인 <방>에서는 책으로 가득찬 한 방을 통해서 도무지 뭔소리를 하고 있는건가싶을 정도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이상한 소설. 확실치 않는 세계에 대한 풍자라고 해야 할까?

 마지막 이야기인 <이무기>에서는 바보 곽영출을 통해서 다양한 인생을 보여주고 있다. 바보의 눈으로 본 세상도 결국은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

 이렇게 총 8개의 단편 속에서는 성석제 특유의 인생에 대한 통찰이 가벼운 비판과 함께 담겨져 있다. 그리고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뭔가 비주류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본 주류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어서 흥미도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인생사를 비꼬아도 성석제의 소설은 웃음을 줄 수 있어서 좋다. 떨떠름한 기분만이 아닌 우선 문장 자체를 즐기고, 그리고 나서 독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식의 그의 작법에 당분간은 계속 빠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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