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행 슬로보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림원 / 1999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 속에는 하루키의 초기 단편들이 실려 있다. 더불어 작가가 말하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어서 흥미롭게 읽어갈 수 있었다. 대개의 경우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하고 글을 썼는지는 밝혀주지 않으니 궁금한데, 이 책의 경우 하루키는 자신이 단편을 어떻게 지었으면 대충 어떤 시기에 지었는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니 왠지 호기심 해결. (이 중에 몇 편을 제목부터 정해놓고 쓰기 시작했다니, 역시 사람마다 이야기를 짓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첫번째 이야기인 <중국행 슬로보트>에서는 자신이 만난 몇 명의 중국인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조금은 코믹하고, 조금은 모자라보이는 이야기에다가 자신의 존재의 위치에 대한 이야기가 섞여들어간 조금은 가볍지만,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는 않은 이야기. 두번째 이야기인 <가난한 숙모 이야기>에서는 가난한 숙모가 없는 주인공이 가난한 숙모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고, 어느 날부터인가 자신의 등에 가난한 숙모가 함께 다니는 조금은 기묘한 이야기. 등에 있는 가난한 숙모라는 존재가 생겨나고, 그것으로 인하여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어느날 훌쩍 사라져버린 이야기에서 왠지 모를 허무함이 느껴졌다. 세번째 이야기인 <뉴욕 탄광의 비극>에서는 줄줄이 주변인의 죽음을 겪게 되는 한 사내의 이야기였고, 네번째 이야기인 <캥거루 통신>은 백화점 상품 관리과에서 일하는 한 사내가 레코드 교환을 원한 고객인 한 여자에게 보내는 편지로 황당하기도 하고, 만약 내가 그 여자였다면 '이거 미친 놈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법한 그런 황당한 이야기. 다섯번째 이야기는 <오후의 마지막 잔디밭>으로 아르바이트로 잔디를 깎는 사내가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일하는 집에서 잔디를 깎으며 겪는 이야기가 보여진다. 내내 차분한 정경이 그려지는 모습. 영화였다면 대사는 몇 마디 없이 화면만 보여지는 영화같았다고 할까. 여섯번째 이야기인 <땅 속에 묻힌 그녀의 작은 개>는 호텔에서 만난 여자와의 이야기로 비오는 풍경이 처음에 제시되서 그런지 비오는 날 인적이 드문 호텔 커피숍에서 읽으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이야기. 마지막 이야기인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에서는 양사나이와 양박사가 등장하는데, 그때문인지 몰라도 <양을 쫓는 모험>이 생각나기도 한. 사실 뭐 내용은 그보다는 추리소설에 나올 법한 무기력한 탐정 같지만. 물론, 뭐 정통 추리소설은 아니고 그저 그런 느낌이었다는...

 한 작가의 처녀작을 읽는 것은 왠지 설레임을 준다. 지금과는 다른 작가의 면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 책은 나에게 설레임을 줬고, 그리고 그런 나의 설레임을 지켜줬다. 그의 다른 장편소설보다는 뭔가 생각할거리는 적은 편이지만, 그냥 가볍게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좋은게 아닐까? 부담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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