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눈의 물고기
사토 다카코 지음, 김신혜 옮김 / 뜨인돌 / 2004년 12월
절판


누군가가 쉽게 싫어지는 걸 멈출 수가 없다. 하지만 입에 담지 않으면 칼처럼 상대를 푹 찌르는 일도 없다. 마음의 피를 보는 일은 없는 것이다. 나는 일어나서 도서관을 나왔다. 최악의 기분. 사람이 싫다는 기분은 더럽다. 독이 있다. 자신이 내뿜는 독에 의해 자신이 더러워지고 고통스럽고 죽을 것 같다-101~2쪽

잃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해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왜 잃어버리는 것만 생각하게 되는 걸까? '사라지지 않는 남자'라는 말이 갑자기 스위치라도 켠 듯이 머릿속에 확 밝혀졌다. 니도리가 좋아한다는 남자 타입. 초조하고 불안하다. 왜 그럴까? 이 강렬한 불안감. 안타까운 느낌. 사라지지 않는 남자 따위 없는 게 아닐지. 어떤 남자라도 사라져버린다. 우리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어떤 인생이라도 반드시 끝난다. 생애를 함께 보내고 내 쪽이 먼저 죽어버리면 사라지는 걸 보지 않아도 되지만. 니도리가 원하는 게 그런건가? 내가 원하는건 그런건가? 잘 모르겠다. 사라지지 않는 남자 -312쪽

눈이 마주쳤다. 기지마의 그런 눈은 본 적이 없다. 강렬하고 뜨거운 눈이다. 기분이 넘쳐나는 눈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예리하게 관찰할 때보다 더 깊이 나를 사로잡았다.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간이 사라져버렸다. 도우루짱도 니도리도 없다. 기지마뿐. 진공의 허무의 어둠 속에 둥실 기지마가 혼자만 있다. "나 무라타를 좋아하고 있어."그 단 한 사람이 갑자기 말했다. 그리고는 스스로의 말에 놀란 듯이 움찔 어깨가 올라갔다. "점점 좋아하게 돼. 틀림없이 더욱더 좋아하게 될 거야. 내 자신의 기분 같은 걸 어떤 식으로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림만 계속 그리고 있었지만, 그림이 아니면 전해지지 않을 거라도 생각하고 있었지만."-336~7쪽

좋아한다는 고백을 듣는 기쁨. 좋아한다는 고백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행복함. 마음을 털어놓으려 할 때에 하려 했던 말은 이제 아무 필요가 없다. 마음에 담아두자. 사라지지 않는 여자가 되겠다는 결심. 사라지지 않는 남자로 삼겠다는 결심-337쪽

"머리가 이상해질 정도로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 있어?" 도우루짱은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웃음을 참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있어." 진짜? " 그 사람 지금도 좋아해?" "옛날 일이야." "싫어졌어? 어디쯤인가에서 좋아하는 마음이 미움으로 바뀌었어?" "글쎄, 어떻게 됐더라. 그렇게 흑백이 분명하진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도오루짱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레이 존에서 페이드 아웃이라고 해야 할까." 페이드 아웃-. 사라진건가. 어느새 사라져버린 건가. 싫다. -34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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