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부터 말했잖아
악셀 하케 지음, 조원규 옮김, 토마스 마테우스 뮐러 그림 / 북라인 / 2002년 7월
절판


음식점 한가운데서 손가락을 치켜들거나 손을 흔들면서 웨이터의 눈길을 기다릴 때의 그 느낌은 정말 싫다. 소리 없는 회전목마처럼 한참만에 한 번씩 주위를 둘러보고 가는 그 눈길 말이다. 나를 바라보기 직전에 웨이터는 눈이 멀어 버리는 모양이다. 일 초 동안 아주 깜깜절벽이 된다. 그 눈길은 나를 보지 못한 채 스쳐가고, 그런 다음에 웨이터는 마술처럼 눈에 덮여 있던 콩꺼풀이 떨어져 나간다. 그의 눈은 다시 주의 깊어지고, 누군가 불과 일 초 동안 치켜든 턱의 움직임이나 거의 눈에 띄지 않을만한 눈짓 하나에도 바삐 달려간다.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내가 유리로 만들어 진것도 아닌데!-100쪽

긴 줄에 서서 기다리는 일은 지겹다. 당신이 어딘가 가고 싶어하는데, 다른 많은 사람들도 당신과 똑같은 곳에 가고 싶어하면, 당신은 할 수 없이 줄을 서게 된다. 뱀처럼 긴 줄이다. 당신은 줄 맨 끝에, 즉 참기 어려운 일이짐나 뱀의 꼬리 부근에 선다.-106쪽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유년의 꿈을 이루어야만 할까? 아니면 그 꿈을 그냥 간직해야 할까? 꿈을 간직했던 때처럼 그렇게 아름답지 않으면 어쩌지? 옛 시절의 기쁨을 느낄 수 없다면? 그렇다면 너는 카누는 가졌지만 꿈은 잃어버리는 거야.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거지-123쪽

그를 보는 것은 습관이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창가로 가서 그를 살폈다. 습관이란 원래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것이다. 어제의 일이 오늘도 이어지고 내일도 그러하리라. 이런 것이 인생에 따라붙는 불안을 가시게 해준다. -126쪽

아마도 그는 죽고만 것이리라. 그는 시간 밖으로 떨어져 나갔다. 이제 그와 내가 공유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같은 리듬으로 똑딱거리는 벽시계들마저 이제 우리를 연결하지 않는 것이다-127쪽

우리는 사소한 일들로 자신을 괴롭힌다. 그런 사소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고달픔을 덜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으련만. 우리는 식당에 가면 우선 방대한 음식 리스트가 적힌 메뉴판을 앞에 두고 고민에 빠진다. 수많은 텔레비젼 채널들, 쏟아져 나오는 여행 안내 책자, 수백만 권의 책들이 꽂혀 있는 넘쳐나는 서가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 지 알 수가 없다. 산더미 같은 건초 더미를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할 의지력이 없는 배고픈 당나귀 꼴인 것이다. -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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