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품절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69쪽

"...좀 있다가 할어버지 집까지 모셔다 드릴 사람은 있나요?" "인샬라. 누군가 분명 있을 게다. 난 신을 믿는다." 신 얘기는 이제 지겨웠다. 신은 언제나 남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니까-172쪽

"...약속해주겠지?" "약속해요." "카이렘?" "카이렘." 카이렘, 유태어로 '당신에게 맹세한다'란 뜻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라면 무슨 약속이라도 했을 것이다. 아무리 늙었다해도 행복이란 여전히 필요한 것이니까-203쪽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거의 혁명이라고까지 할 수 있었다. 갑자기 내가 예전의 내가 아닌 듯 느껴질 때처럼,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이제 예전처럼 생각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227쪽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나도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죽을 맛이었다. 이건 아닌데, 생이 이런 건 아닌데, 내 오랜 경험에 비춰보건대 결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문득 문득 뇌리를 스쳐갔다. 사람들은 말없이 하나둘 줄을 지어 밖으로 나갔다.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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