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위증 3 - 법정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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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생각났습니다. 그때 그애가 이런 말을 했어요. 인간은 변하지 않네요, 라고. 인간이 하는 짓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어떤 체제를 만들고 그 속에서 박해하거나 박해당한다. 박해당할 것이 두려워 남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실제로 마녀사냥이나 이단심문의 폭풍이 거세게 휘몰아치는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자기가 밀고당할까 두려운 나머지 남을 먼저 밀고하기도 했고, 밀고당한 사람이 죄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절대권력을 가진 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 자기가 마녀나 이단자로 고발당할까봐 두려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죠."
그러니까 이건, 하며 증인 혼자서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그런 상태가, 현재 학교교육 현장과 비슷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라 생각했습니다."
"학교라는 체제 안에서 학생은 그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죠."
"그렇습니다.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체제에 반항하면 처벌을 받으니까요."-254~5쪽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권력자인 교회와 무력한 신자 일개인의 관계와 닮았다는 걸까요."
"신자끼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밀고당한 자와 밀고자의 관계는 이를테면 집단괴롭힘을 당하는 학생과, 그가 당하는 걸 알면서도 자기한테 불똥이 튈까 두려워 못 본 척하는 주위 학생들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단숨에 말을 쏟아놓고 단노 선생이 숨을 몰아쉬었다.
"물론 이건 엄청난 확대해석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현재의 학교교육 시스템이 중세 교회와 마찬가지라는 건 너무 비약이죠. 실제로 학교는 그만한 권력도 없습니다. 교사의 입장은 한없이 약하니까요."-255쪽

"가시와기 군이 오이데 군 일행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은 말하자면, 마녀나 이단자로 몰려 박해당하는 자가 박해하는 자들을 향해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질문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신들은 그게 악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느냐'고. 좀더 나아가자면, 그것은 이토록 무자각한 악이 날뛰는 세상에서 선하고자 하는, 올바르고자 하는 자가 살아갈 의미가 있느냐, 살아갈 의의를 찾을 수 있느냐는 물음으로도 이어집니다."
이노우에 판사가 증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는 이 학교, 현대사회와 교육체제 속에서 줄곧 그런 생각을 해왔겠죠. 교사에게는 획일교육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평가받고 선별되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외모나 신체적 능력, 사교성 등으로 또다시 추려져 배척당하거나 공격당한다. 거기에는 엄연한 '악'이 존재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악'이라고 지적하지 않는다. 누구도 감히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반문하지 않는다. 가시와기 군은 그런 데 정나미가 떨어진 겁니다."-259쪽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 남들 눈에 띄지 않는다. 세상은 우리와 관계없는 곳에서 돌아간다.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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