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위증 1 - 사건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9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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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들의 웅성거림이 커져갔다. 구니코의 눈에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우두커니 서 있는 쓰자키 교장과 다카기 학년주임이 연못가에 선 어린아이들처럼 보였다. 연못에 돌을 던지자 수면에 파문이 인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잠잠해질 때까지 지켜본다. 잠잠해지면 어떤 물고기가 튀어오릴까 하고 뚫어져라 바라본다. -110쪽

어딘가에서 길을 바로잡아줄 수는 없었을까-료코는 생각했다. 가시와기 다쿠야의 길. 그가 어디를 걷고 있는지 대부분은 알지 못했다. 그의 지도는 그만의 것이었다. 부모 형제조차 그 지도에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몰랐던 걸까. -153~4쪽

"부탁이 있습니다. 부디 우리 다쿠야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여러분은 앞으로 많은 것을 배우며 어른으로 자랄 것입니다. 때로는 괴로운 일도 생기겠죠. 벽에 부딪힐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럴 때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다쿠야를 떠올려주십시오. 그리고 살아 있다는 건 멋진 일이라고 다시 이를 악물어주십시오. 아무리 고통스럽고 괴로워도 살아 있다는 건 멋진 일입니다. 생명은 소중합니다. 그것이 다쿠야의 유언입니다. 그 아이도 지금 하늘 위에서 틀림없이 그렇게 확신하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다쿠야는 그런 확신을 얻기 위해, 구태어 죽음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을지 모릅니다."-156쪽

자살이었구나-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여전히 코를 훌쩍거리며 마리코가 말했다.
"조금 안심했다고 하면- 안 되겠지?"
당연히 안 되지, 라고 퉁명스레 받아칠 뻔했지만 료코는 말을 삼켰다.
안심하겠지. 모두 안심할 거야. 학교에는, 반 아이들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걸 알았으니 안심하고말고. 당사자의 부모가 그렇게 인정했으니 무죄방면된 느낌일 테지.
하지만 그렇게 안심했다면 우는 건 위선 아닌가? 안심했다면서 넌 어떻게 그렇게 울 수 있니?-156쪽

생각해보면 형제자매 관계도 일종의 체제다. 가정이라는 체제에 흡수되어 있긴 하지만 '독립된 관계성'을 지닌 사회인 것이다. 다쿠야는 그 사회 내에서 폭군처럼 행동했다. 부모의 착한 마음씨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인 형 히로유키는 그 파괴력에 맞설 수 없었다. 휘두르는 대로 얻어맞고 학대당했다.
유일하게 현명했던 행동은 그 사실을 깨닫고 도망친 것이다.
다쿠야가 자폭한 것은 어쩌면 도망간 형에게 약이 올라서인지도 모른다. 놓쳤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좀더 오래도록 형을 먹잇감으로 삼으려 했는데. 더 큰 사회로 나가기 전에 형을 토대로 파괴력을 단련하려 했는데. 형의 인생의 기반을 철저하게 무너뜨려 만족을 느끼고 싶었는데.
자살을 하면 적어도 마지막 일격을 가할 수 있다. 내가 죽은 건 형 때문이야. 평생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찍어줄 수 있다. -196쪽

저는 학교란 세상살이를 배우는 장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어느 정도 되는 인간이고 어느 정도까지 갈 수 있는지 가늠해보는 장이요. 선생님들은 나름의 잣대로 그것을 가늠하고 우리에게 납득시키려고 하죠. 그렇지만 납득하면 대부분 패자가 돼요. 선생님들이 '승자'로 뽑고 싶어하는 학생들은 극소수니까. -296쪽

미숙함은, 젊음은 모두 같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 어떤 일을 하면 금방 결과를 보고 싶어한다. 인생이란 곧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교훈은 평균수명의 절반 이상을 살아보지 않고는 체감할 수 없다. 그리고 진절머리 나는 일이지만 그 교훈이 진실이라는 걸 깨달으려면 아마도 남은 인생 전부를 바쳐야 할 것이다. -301~2쪽

같은 학년이나 같은 반이라고 모두가 격의 없이 지내는 건 아니다. 현실은 반대다. 성적. 외모. 운동신경. 적절한 상황에 재치 있는 말을 던지는 능력. 밝거나 어두운 성격. 학생들은 서로 온갖 잣대로 측정하고 측정당한다. 그렇게 해서 친하게 지낼 상대를 정한다. 선생님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어른의 사회에 구별이나 격차가 있듯 학교에도 그런 것이 존재한다. 아이들은 누구나 그것을 안다. 이해한다. 인정한다.
안 그러면 살아갈 수 없다. -35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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