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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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삶은 살아 있는 자의 것이었다. 죽은 자는 산 자의 밥상 뒤에서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183쪽

빨간 눈은 원인 균이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바이러스인지, 세균인지, 전염 방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므로 의료팀이 할 수 있는 조처는 거의 없었다. 해열제, 항생제, 수액이나 산소 공급 등 효과가 거의 없는 몇 가지 처방이 전부였다. 박남철 과장은 치료자 자신에 대한 보호를 강조했다. '접촉'이라는 같은 조건에서 발현하지 않은 사람들은 병원체에 감수성이 없는 행운아일 테지만, 무감수성의 조건이 무엇인지 현재로써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그 행운아이기를 바라지는 말자고 했다. 수진은 자신이 혹시 그 행운아가 아닐까, 생각했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그러기를 바랐다. 은지는 그런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은지도 같은 생각을 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다 죽어도 나는 죽고 싶지 않아. -190쪽

빨간 눈의 원흉이 개라는 말로 들렸다. 그렇게 들리도록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이 개에게'라는 부분을 생략하고 '개 한 마리가 수백 명의 사람에게'를 부각시킨 탓이었다. '살 처분'의 명분을 만들기 위한 생략이요, 과장이었다. 이 교묘한 말장난이 사람들 사이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는 두 번 생각해볼 필요조차 없었다. 재형은 망연한 심정으로 구급차 뒤 칸에 실린 개들을 돌아봤다. 모처럼 드라이브를 하게 됐다고 즐거워하는 개들 사이에서 대장 츄이의 푸른 눈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흔들림 없고 차분한 눈이었다. 세상이 어떻게 되던, 우리만큼은 안전하게 보호받으리라 믿는 것처럼. -213쪽

여론은 화양 봉쇄의 당위성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접촉한 지 하루면 눈이 빨갛게 되고, 빨간 눈이 나타난 지 이삼 일 내에 사망에 이른다는 이 무시무시한 전염병은 전 국민을 종교적 수준의 공포와 공황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각 언론사와 방송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90퍼센트가 대통령의 결단을 지지했다는 게 그 증거였다.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전군을 동원해서라도 빨간 눈의 서울 상륙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화양시민 29만의 문제가 아니라 5천만의 생명이 걸린 '전쟁'이라는 것이었다. 국민들에겐 화양과 빨간 눈이 동의어나 마찬가지였다. -230쪽

언론은 여론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임무를 수행했다. '전염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임기 2년 차에 돌입한 대통령의 정치력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고 논평하고, 화양시민은 원인 균이 규명돼 진단 시약이나 치료제 및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돌출 행동을 자제하며 정부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고 충고하면서, 발병에서 치사에 이르는 기간이 짧아 화양을 철저하게 격리한다면 대유행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동시에, 시간이 지나면 사스처럼 자연 소멸될 수도 있다는 낙관론을 폈다. -231쪽

인터넷과 SNS에선 수십만 개의 손가락들이 수십만 개의 훈수를 뒀다. 세계보건기구와 손잡고 빠른 시일 내에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둥, 이 전염병에 '빨간 눈' 괴질이 아닌 보다 적절한 이름을 붙여줘야 한다는 둥, 정체 모를 병의 유행으로 대중이 막연한 공포를 느낄 때 정부와 언론은 어떻게 소통을 해야 하고 공중과는 어떤 내용으로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매뉴얼을 만들어 실행하라는 둥. 더하여 희한한 풍문들이 'RT'를 통해 무한 확산됐다. 빨간 눈은 개와 사람의 바이러스가 합방해 낳은 이종 변이 바이러스라느니, 화양에 내린 이 새빨간 저주는 사악한 세상을 정화시키기 위해 신이 보낸 최후의 불벼락이라느니, 생마늘과 홍삼을 많이 먹으면 빨간 눈에 걸리지 않는다느니……. -231쪽

고글과 마스크 같은 방역 물품, 기본 생필품이 순식간에 동나버렸다. 카드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됐고, 화양시내의 현금인출기는 모조리 빈 깡통이 됐다. 도로에선 차들이 폭주하고, 사람들은 라면 한 상자를 놓고 주먹다짐을 벌이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쇠 파이프로 상점 유리창을 깨고 들어갔다. 동네 골목길과 도로에는 하룻밤 새 버림받은 개들이 떼를 지어 나돌아 다녔다. (중략) 화양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불이었으나 불을 대하는 안팎의 태도는 이렇듯 확연하게 달랐다. 두려움으로 이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만 똑같았다. 안쪽은 자신이 죽음의 손아귀에 갇혔다는 사실에, 바깥쪽은 자신에게 죽음의 손이 뻗어 올까 봐. -232~3쪽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성이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성. 그가 쉬차를 버리지 않았다면 쉬차가 그를 버렸을 터였다. 그것이 삶이 가진 폭력성이자 슬픔이었다. 자신을, 타인을,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고 연민하는 건 그 서글픈 본성 때문일지도 몰랐다. 서로 보듬으면 덜 쓸쓸할 것 같아서. 보듬고 있는 동안만큼은 너를 버리지도 해치지도 않으리란 자기기만이 가능하니까. -345~6쪽

윤주는 종종 궁금했다. 사람들은 왜 가만있지 않는지. 안전한 자기 집을 두고 감염의 위험과 무장 군인, 추위와 허기가 기다리는 광장에 모이는 진짜 이유가 뭔지. 이 방에 홀로 남은 지금에야 그녀는 답을 알 것도 같았다. 그들은 '누군가'를 향해 모이는 것이었다.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확인시켜줄 누군가, 시선을 맞대고 앉아 함께 두려워하고 분노하고 뭔가를 나눠 먹을 수 있는 누군가, 시시각각 조여드는 죽음의 손을 잊게 해줄 누군가를 만나고자 그곳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404쪽

대원들 대부분이 기준처럼 혼자가 됐거나 돼가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소방차를 타는 건 도망치기 위함일 거라고, 기준은 생각했다. 현재에 이르게 만든 모든 것들에 대한 분노로부터, 매일 매 순간 밀려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과 홀로 남았다는 외로움으로부터, 다시는 일상을 되찾을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으로부터. 저 많은 사람들이 이 광장에 모여 앉아 울분을 토하고, 박수를 치고, 내일을 희망하며 삶을 확인하듯. -409~4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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