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넘어 함박눈
다나베 세이코 지음, 서혜영 옮김 / 포레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영화도 책도 재미있게 봤는데 어째서인지 다나베 세이코의 다른 소설과는 인연이 없었다. 국내에 번역서가 여러 권 소개되었던 터라 관심만 있다면 빠질 수도 있었겠지만, 건어물녀마냥 건조한 나는 연애소설이라니 어쩐지 간질간질하고 소녀같군 하며 다나베 세이코의 작품과는 자연 멀어졌다. 그러다 서른이 되고 봄바람 불자 <서른 넘어 함박눈>의 분홍분홍한 표지에 마음도 부농부농해져서 오랜만에 다나베 세이코를 만났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에서는 사랑이 시작될 때의 설렘, 사랑이 진행될 때의 열정, 그리고 식어버린 사랑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사랑을 폭넓게 보여준다면 <서른 넘어 함박눈>의 여자들의 모습은 그보다 조금 구깃구깃하다. 여행지에서 멋진 남자에게 "저어…… 실례지만 지금 몇 시예요?" 하고 물으며 다니기도 하고, 룸메이트의 남자가 두고 간 듯한 특대 흰 팬티를 보고 공상을 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그물을 쳐놓고 남자가 걸리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서른이 넘어 한 살씩 나이가 먹어가면서 운명적인 사랑이란 없음을(혹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고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지만, 그래도 내심 우연한 계기로 만난 사람과 사랑에 빠지거나 오래 알고 지낸 사람과 팟, 하는 계기로 결혼에 골인하기를 꿈꾼다. 

 

  사실 이 책에서 만나는 여자들은 그리 낯설지 않다. 카페 옆자리나 술집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연히 만난 부부의 대화나 옆방에서 들려오는 농밀한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우는 이 책 속의 여자들처럼 어느샌가 나도 그녀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30대 여자의 사랑과 인생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와 일본드라마 <결혼하지 않는다結婚しない>를 볼 때처럼 무한공감하며 읽었다. '좋은 사람'이 생기면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지만 등떠밀려서 하고 싶지는 않은, 이왕이면 조건에 맞춰 결혼하기보다는 내 힘으로 사랑을 이뤄가고 싶은, "주위엔 별 볼일 없는 녀석들"뿐이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결혼을 할 수 없는 처지라면 못 해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결혼을 하는 쪽이 안정되고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서른 넘어 함박눈>에서 만난 여자들의 모습 속에 나를 슬쩍슬쩍 만나는 것 같아 즐거웠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아, 봄이구나.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슬몃 고개를 들었다. 아아, 봄도, 서른도, 사랑하기 좋은 때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