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쩨쩨한 로맨스
다이도 다마키 지음, 김성기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5월
절판



 그의 행동에는 어린애가 곤충을 핀셋으로 만지작거리는 듯한 연구심과 잔혹함이 어우러져 있다. 일단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전혀 생각지 않는다. 그리고 흥미를 잃으면 냉정하게 돌아선다. 그래도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저 여자도 나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 우린 똑같은 입장이잖아. 나는 다시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남들 앞에서 굳이 저렇게 떠벌릴 필요가 있을까. 저러면 결국 그의 입장만 곤란해질 텐데.
-36쪽

앞으로도 이 사람하고 몇 번, 아니 몇십 번쯤 이렇게 같이 식사를 하겠지. 이건 예감인가, 아니면 희망인가. 아아. 절망적이다. 너무나 우울한 미래가 아닌가.-52쪽

 늘 당신이 지금 뭘 먹고 있을까 하고 생각했지. 가능하다면 앞으로 쭉 지켜보고 싶었고. 지금도 강요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당신이 떠날 때마다 돌아오라고 말하고 싶더군. 줄곧 그렇게 말하고 싶었어. 근데 옆에 있으면 왠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당신을 위해선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55쪽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순 없을까. 새로 시작한다. 아아, 이 얼마나 신선한 느낌인가. 젊음이 넘친다. 순수함이 넘친다. 생기발랄하다.-68쪽

그는 헤어지는 순간까지 답답할 정도로 느릿느릿하게 말을 이어 갔다. 헤어지기 전에 뭔가 멋진 말을 들려주고 싶은 모양이다. 미련을 남기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105쪽

나는 양팔을 쩍 벌린 채 앞으로 넘어질 듯 끌려가면서, 고개를 돌려 그에게 어색한 표정으로 살짝 머리를 숙였다. 그러자 상대도 부드럽게 눈으로 인사한다. 이것으로 불편한 감정이 말끔히 지워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왠지 상대가 '응, 괜찮아. 지난 일은 용서해줄게.'하고 말하는 것 같아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내가 용서를 받아야 할 뭔가 나쁜 짓이라도 한 걸까. 딱히 생각나는 일이 없다. 나는 단지 그를 찼을뿐이다. 상대가 싫어졌으면 그런 자기 생각을 빨리 전하는 게 좋지 않은가. -121쪽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을의 밤 하늘은 밝은 별들이 많지 않아 쓸쓸하다. 걸음을 옮기고 있는 사이에, 지금이 후쿠오카에서 별똥을 봤던 그 시간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지금 여기 있잖아. 하늘을 올려다보니 부르르 몸이 떨렸다. 왠지 불안하다. 마음이 허전하다. 거리의 돌멩이보다 더 보잘것 없는 내가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다. 그 뿐이다.-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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