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 Rosso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구판절판


언제부터인가 생일은 행복한 날도 특별한 날도 아니다. 언제부터일까.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다. 나이 따위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
-40쪽

쥰세이는 내가 처음 섹스를 한 남자는 아니었지만, 이런 식의 표현이 허용된다면, 진심으로 몸을 허락한 - 모든 것을 허락한 - 첫 남자다. 처음이고, 그리고 유일한.-98쪽

나는 쥰세이를, 헤어진 쌍둥이를 사랑하듯 사랑했다. 아무런 분별도 없이.-99쪽

쥰세이는 동사의 보고였다. 만진다. 사랑한다. 가르친다. 외출한다. 본다. 사랑한다. 느낀다. 슬퍼한다. 사랑한다. 화를 낸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더욱 사랑한다. 운다. 상처 입는다. 상처 입힌다.-109쪽

*"쥰세이."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리자, 그 이름은 어두운 부엌에 엄청난 위화감을 가져다 주었다. 엄청난 위화감과, 눈사태 같은 그리움을. -177쪽

아오이. 그 한마디에 쥰세이의 목소리가 되살아난다. 쥰세이는, 늘 쥰세이밖에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 이름을 발음하였다. 모든 언어를. 성실하게, 애정을 담아. 나는 그가 이름을 불러 주면 좋아했다. 아오이. 아주 조금 주저하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그 목소리의 온도를 좋아했다. 쥰세이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지금 당장 듣고 싶었다. 세월 따위 아무 소용 없었다. -194쪽

나는 돌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 돌아갈 장소. 줄곧 그런 장소를 찾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들지만, 한 번도 없었다. 쥰세이가 보고 싶었다. 기묘한 열정으로,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 만났다고 해서 뭐가 어떻게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다만 쥰세이와 얘기하고 싶었다. 내 말이 통하는 사람은 쥰세이밖에 없다.-203쪽

돌아갈 장소. 사람은 대체 언제, 어떤 식으로 그런 장소를 발견하는 것일까. 잠 못드는 밤, 나는 사람을 그리워함과 애정을 혼동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매사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8쪽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는 것이란다.-210쪽

비 냄새 나는 싸늘한 공기를 들이키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누구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내 가슴속에는 누가 있는 것일까. 누가, 있는 것일까.-211쪽

내내, 쥰세이와 함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인생은 다른 곳에서 시작됐지만, 반드시 같은 장소에서 끝날 것이라고. -225쪽

언어가 기호 같았다. 기호이기에, 그렇게 쉽사리 입에서 미끄러져 나오는 것이리라. 소중한 것은 무엇 하나 말하지 못한 채. -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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