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연기하라
로버트 고다드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스티븐 킹을 놀라게 한 작가'라는 띠지 문안에도 혹했지만, 무엇보다 지금까지 스무 권 이상의 장편을 발표했음에도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라는 점이 끌렸다. 한 남자가 인형을 조종하는 표지 그림을 보면 이 책이 무대와 관계 있음을, 제목의 연기가 '연기(演技)'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책을 읽을 당시의 마음은 '연기(延期)'에 가까웠다. 페이지는 눈여겨보지 않고 그냥 머리 식힐 겸 읽으려고 주문했는데 500페이지가 넘어 어쩐지 여유 있을 때로 미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니 '일생 일대의 상황'을 맞닥뜨린 주인공의 모습을 하루하루 지켜보면서 점점 이 남자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그의 연기를 끝까지 정신없이 지켜보게 되었다.

 

  주인공 토비 플러드. "로저 무어의 뒤를 이어 새로운 제임스 본드가 될 뻔"했지만, 그의 연기 인생은 "몇 년 전에 뚜렷한 이유도 없이 본궤도에서 이탈해 옆길로 들어"선 상황이다. 순회공연 중인 연극도 반응이 그저 그래서 연기 인생이 끝나갈 참이고, 별거중인 아내와의 결혼생활도 끝이 보인다. 그러던 중 토비는 아내에게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토비의 극성팬을 쫓아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어떻게든 아내와 다시 시작해보고팠던 토비는 이 일을 계기로 재기를 노리고, 팬으로 보이는 남자는 토비와 이야기를 나눈 뒤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그의 바람처럼 진행되는 것 같았던 일은 팬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시 아내의 곁을 맴돌고 이에 항의하는 토비에게 그의 연극무대가 시작되는 8시에 단둘이 만나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후 토비는 생각지도 못한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몰리게 된다. 그의 무기는 '끝까지 연기하는 것'뿐. 잇단 의문과 죽음을 토비는 어떻게 헤쳐갈 수 있을지.

 

  "인간이 상상도 못할 기묘한 방식으로 운명의 날실과 씨실을 얽"은 상황에 떨어져 일주일 동안 편안히 잠 잘 새도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토비의 모습에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지만, 한편으로는 대체 어떻게 마무리하려고 일을 이렇게 벌이는 건가 걱정도 됐다. 토비라는 캐릭터가 연극배우이면서 탐정의 자질이 있는 게 아니라 자기에게 닥친 일을 자기 딴으로 수습하기도 바쁜 판인데 어쩌자고 대기업의 비밀까지 파고들어가는 건가 했는데, 결국 막판에 제삼자가 사건을 마무리짓는 모습을 보며 이게 어떤 의미로는 반전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 온갖 육체적, 정신적 고난을 겪으면서도 토비는 대기업의 음모를 위해 버티는 것이 아니라 별거중인 아내 제니의 관심(또는 사랑)이라는 개인적인 목표를 좇을 뿐이다. 그가 맞선 것은 운명이나 유령 같은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니라,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을 단 한 번의 기회는 아니었을까.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어쩌면 미래 역시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라고 이야기 초반에 얘기했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미래를 다른 누구의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손에 넣는다.

 

  기대했던 형태의 반전은 없어서 아쉬웠지만 지문 사이, 대화 사이에 살짝 녹아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시각은 좋았다. 예를 들어, 토비는 "연기자는 무대 위에서도 무대 밖에서도 가식의 탈을 뒤집어쓴다. 하지만, 내 경우엔 상황이 변했다. 완전히"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책을 읽는 독자 또한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무대가 아닌 현실에 발을 디딘 채 연기를 하고 있지 않을까. 토비는 자신이 "처한 곤경을 이치에 맞게 다른 이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라고 토로했지만, 어차피 타인을 이해시키는 것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는 것일뿐이 아닐까. 어이없을 정도로 뒤통수 때리는 반전이 아니라 맥이 좀 풀릴 수 있지만, 슈퍼히어로가 아닌 평범남이 등장하는 속도감 있는 스릴러 정도로 읽는다면 분량에 관계 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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