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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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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동전처럼 뒤집히려는 기로에 서 있을 때 지금이 그런 순간인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인간이 무슨 수로 알 수가 있을까. -14쪽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에 향수를 느끼는 이유는 악취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잊어버렸거나, 50년대 황금기를 운운할 때 그런 측면은 아예 감안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61쪽

역사라는 강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여러 분수령 중에서도 변화를 일으킬 여지가 가장 다분한 사건이 암살이야. 성공한 경우도 그렇고, 실패한 경우도 그렇고.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가브릴로 프린치프라는 별 볼일 없는 정신병자의 손에 암살당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됐지. 반대로 1944년에는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가 히틀러를 암살하려다 실패하는 바람에 (성공할 뻔했지만 실패로 끝났지.) 계속된 전쟁으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 영화라면 나도 본 적이 있었다.
앨이 말을 이었다.
"페르디난트 대공이나 아돌프 히틀러는 어쩔 방법이 없어. 우리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
나는 우리라는 대명사를 내세워 가설을 세울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아주 섬뜩한 소설을 읽는 듯한 심정이었다. 예컨대 토머스 하디의 작품이랄까? 어떤 식으로 결말이 맺어질지 알고는 있지만, 그로 인해 흥이 깨지기는커녕 더욱 고조되는 긴장감. 모퉁이에서 탈선하길 바라며 전차의 속력을 더욱 높이는 아이를 보는 것과 비슷한 이 기분. -92~3쪽

나도 서스펜스 소설의 기본을 아는데(한평생 스릴러를 수도 없이 읽었으니 그럴 수밖에) 독자의 궁금증을 계속 유발해야 한다는 것이 제1원칙이다. -94쪽

아, 스텝 좀 꼬이면 어때. 이렇게 아름다운걸. 나는 7번 도로를 달려 켄두스케그 서안에 떡하니 자리 잡은 데리를 접한 이래 처음으로 행복해졌다. 나는 그 기분을 간직하고 싶어서 발걸음을 옮기며 오랜 가르침을 가슴에 새겼다. 돌아보지 마, 절대 돌아보지 마. 유난히 좋았던 일(혹은 유난히 나빴던 일)을 겪은 뒤에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인간은 돌아보게 되어 있다. 목에 회전이 되는 관절이 달린 이유가 그 때문이다. -223쪽

나는 교단에서 늘 단순의 미학을 강조했다. 소설이건 비소설이건 딱 한 가지 질문, 딱 한 가지 대답으로 이루어지는 법이라고. 독자가 어떤 일들이 있었느냐고 물으면 작가가 이런 일이 잇었다고 대답하는 식인 거라고. 그리고…… 이런 일…… 이런 일도 있었다고 대답하는 식인 거라고. 군더더기를 배제하라고. 그것이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이라고.
나도 노력하겠지만, 데리에서 겉으로 보이는 현실은 시커멓고 깊은 호수를 덮은 얇은 얼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노력을 하자면.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이런 일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일도. 또 이런 일도. -230쪽

"과거는 고집이 세요, 앨. 과거는 바뀌길 원치 않아요."
"나도 알아. 내가 자네한테 한 말이잖아."
"맞아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과거가 변화에 저항하는 강도는 어떤 행위에 따라 미래가 얼마나 달라지는가에 정비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346쪽

어느 방 안에 들어갔는데, 카드로 복잡하게 만든 여러 층짜리 집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걸 쓰러뜨리는 게 당신에게 주어진 과제다. 그뿐이라면 쉬울 것이다. 발을 세게 구르든지 생일 촛불을 한꺼번에 끄려고 만반의 준비를 할 때처럼 힘껏 입김을 불면 될 테니까.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문제는 그 카드 집을 특정한 시점에 쓰러뜨려야 한다는 거다. 그 전까지는 잘 보존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379쪽

나는 이런 일에 무작정 끌어들인 앨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좀 더 맑은 정신으로 생각해 보면 시간이 더 주어졌던들 뭐가 달라졌을까 싶었다. 오히려 상황만 더 안 좋아졌을 가능성이 지대하고, 어쩌면 앨은 그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자살을 하지 않았더라도 내게 주어진 시간이 기껏해야 1, 2주에 불과했을 텐데, 댈러스의 그날과 연쇄적으로 연결된 사건들을 다룬 책이 몇 권이나 될까? 100권? 300권? 어쩌면 1000권에 육박할지 모른다. 어떤 이는 앨처럼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이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배후에 정교한 음모가 있었다고 주장했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총을 쏜 게 아니라 체포된 이후에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덤터기를 쓴 거라고 못을 박았다. 앨은 자살이라는 방식을 통해 학자의 가장 큰 약점을 제거했다. 자료 조사라는 미명 아래 미적대지 않았던 것이다. -4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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