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교토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 일정을 짜는 것이나 숙소 예약보다 『금각사』를 먼저 챙겼다. 오래전에 삼 분의 일쯤 읽다가 어쩐지 잘 읽히지 않아 포기했던 책이라 한편으로 이번엔 읽을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지만 교토에서 『금각사』를 읽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같았다. 여행지에서 독서라니, 이것이 나의 얄팍한 허영이라 할지라도 나는 금각사가 있는 교토에서 『금각사』를 읽고 싶었다. 책을 챙길 때만 해도 『금각사』를 읽은 뒤 실제 금각사를 보자 싶었지만, 금각사 쪽에 숙소를 잡은 관계로 짐을 풀자마자 금각사에 달려가는 바람에 실물을 먼저 접한 후 『금각사』를 읽기 시작했다. 그후 매일 밤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이 책을 읽은 덕분에 내 교토 여행은 조금 더 풍성해졌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금각사』는 1950년에 있었던 금각사 방화 사건을 소설로 재구성한 책이다. 미시마 유키오는 금각을 불태운 미조구치라는 인물의 성장과정과 내면 묘사를 통해 그가 왜 '금각을 불태울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려낸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금각처럼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었고, 또한 금각이라는 글자, 그 음운으로부터 내 마음이 그려낸 금각은 터무니없이 멋진 것"이라는 "금각의 환상"을 품어온 미조구치가, 금각사에 도제로 들어가면서 금각과 싱겁게 만나게 되고 금각과 미묘한 관계를 맺어가는 장면들을 통해 '절대적인 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이코라는 여자아이에 대한 관심과 그녀의 죽음, 금각의 주지가 되었으면 하는 부모의 기대, 그나마 자신을 현실과 이어준 쓰루가와의 만남과 그의 죽음, 대학에서 가시와기와 만나며 시작된 일탈, 패망으로 인한 충격 등 내외부적인 사건을 계기로 한 인물이 어떻게 그릇된 노선을 걷게 되는지 『금각사』는 잘 보여준다. 워낙에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기 때문에 『금각사』는 탐미주의 문학이든, 성장소설이든 혹은 '금각사 방화'를 소재로 한 수기든 어떻게 읽어도 완전하고 무궁무진하다. 


  금각에 대한 기대, 동경이 실망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불괴의 아름다움"이 되어 "순수한 파괴"에의 갈망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변화는 가벼이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전쟁이라는 흐름이나 세월의 흐름과는 상관 없이 항상 그 자리에서 (비의도적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하는 불멸의 금각과, 계속하여 변해가고 겉모습과 달리 위선과 탐욕으로 가득 찬 미조구치 주변의 사람들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금각은 점점 더 굳건한 존재가 되고, 이 세계는 파괴될 수밖에 없는(혹은 파괴되어야만 하는) 것이 되어간다. 


  미조구치가 금각을 불태우는 것은 그의 말처럼 "순수한 파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이며, 인간이 만든 미의 전체 무게를 확실히 줄이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조구치 한 사람에게 있어서 이것은 탈아에의 의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더듬이에 가난한데다가 친구도 몇 없어 안으로만 침잠하는 인물. 자신의 열등함을 인지하나 부모에 의해, 주지에 의해 더 나은 인물이 되기를 기대받고, 그로 인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인물. 그런 미조구치가 이상으로 대변되는 금각을 불태우고 "살아야지" 하고 결심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등 떠밀리듯 쫓아간 이상에 대한 갈망을 버리고 현실에 발을 딛고 살고자 하는 의지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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