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이동윤 옮김 / 검은숲 / 2013년 2월
절판


카렐라가 다시 연락을 취하기까지 시간이 걸린 까닭은, 경찰 조직은 작은 군대와 비슷하며 그중에서도 살인 사건은 끝없는 전쟁 중 벌어지는 큰 전투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덩치가 큰 군대에서라면 작은 전투들도 심각한 고려 사항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찰 조직 같은 작은 군대에서는 살인 사건 같은 커다란 전투가 발생하면 일선에서 싸우는 수많은 사람들의 상당한 주의와 참여가 요구된다. 그들이 최전선에 배치된 이 도시에서는 살인 사건에 배정된 분서 소속 형사는 대개 원래 담당하던 사건이 있기 마련이었고, 그가 새 사건을 담당하는 동시에 원래 사건은 같은 팀 내의 다른 형사들이 떠맡게 된다. 한 형사가 "그 사건은 내가 맡지" 혹은 "내가 굴려보겠어" 같은 말을 하거나 그러한 취지의 다채로운 전문용어를 사용하게 되면, 그 사건은 공식적으로 그 형사의 담당이 된다. 그리고 사건이 해결되거나 상부의 결재가 끝날 때까지(이 둘은 사건을 해결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동일한 사항이 아니다.), 아니면 자포자기해서 두 손을 놓아버릴 때까지 그 형사는 여기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50~1쪽

그러나 살인 사건은 매우 중대한 공격적인 태세로 취급되기 때문에, 수사반 내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경찰 조직 내에 생겨나기 마련이었다. 이 도시에서는 분서 수사반 소속 형사가 '제대로 된' 살인 사건을 담당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해야만 했다.

1. 경찰청장
2. 경찰청 국장
3. 지방경찰청장
4. 시체가 발견된 지역에 따라 동부 살인반, 혹은 서부 살인반
5. 시체가 발견된 지역 분서의 형사들 및 형사 반장
6. 검시관
7. 지방검사
8. 본부 정보통신과
9. 경찰 감식반
10. 경찰 사진반-51쪽

번스는 그의 모습을 이해하려 심리학 지식을 짜냈다. 심리학이야말로 경찰 업무에서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했다. 세상에는 불행한 사람들만 있을 뿐, 더 이상 악당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밤중에 좀도둑에게 사타구니를 걷어차이기 전까지는 심리학은 굉장히 유용한 도구였다. 하지만 일단 한번 차이게 되면, 그 좀도둑은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은 상처받은 영혼이라고 상상하는 일이 조금 더 어려워졌다. 같은 이치로 번스는 클링의 행동에는 그 사건의 트라우마가 작용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거 몇 년 전 이야기야? 카렐라는 문득 궁금했다.) 그렇긴 해도 카렐라는 클링이 스스로 나락에 빠지는 경찰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점점 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클링은 스스로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169~170쪽

브라운은 자신이 경찰이라는 사실이 기뻤다. 사람들이 거리에서 자신을 피하는 진짜 이유가 백인들은 흑인이 모두 도둑 아니면 살인범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형사로 승진한 일을 자주 후회하곤 했다. 자신의 갈색 피부와는 달리 경찰임을 증명하는 푸른색 제복을 더 이상 입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브라운은 자신과 같은 인종인 사람들을 불시 단속하는 것을 특히 좋아했다. 흑인 녀석들이 그에게 "에이, 친구. 한 번만 봐달라고" 같은 말을 하는 걸 특히 좋아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더 이상 브라운의 친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브라운과 하마와의 관계보다 더 먼 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브라운의 세계에는 좋은 놈과 나쁜 놈이 존재하듯 백인과 흑인이 존재했고, 두 구분 방법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브라운은 좋은 놈들 중 하나였다. 법을 어기는 사람들은 모두 나쁜 놈이었다. -179쪽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뭘 받으셨습니까?"
"살인 사건."-192쪽

많은 사람들은 하루는 자정에 끝난다고 믿지 않는다. 잠자리에 들 때까지는 여전히 같은 날인 것이다. 그러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비로소 다음 날이 시작된다. -233쪽

미치광이들은 경찰 업무를 더욱 힘들게 했다. 미치광이를 상대하게 되면 교범 따위는 내던져버리고 감으로 사건을 파헤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미치광이가 행동하는 방식이 딱 그런 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도시에는 수많은 미친놈들이 살고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대부분은 지구 종말을 알리는 팻말을 들고 다니거나 시장이나 날씨에 대해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며 홀 애버뉴를 떠돌아다니는 정도에 만족하며 지냈다. 이 도시의 미치광이들은 날씨에 대한 책임은 시장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정말로 시장 책임일 수도 있었지만. -291쪽

그는 보통 때에는 철학적인 사람이 아니었지만, 가장 두꺼운 코트를 입고(그 아래에는 재킷을, 그 아래에는 스웨터를, 그 아래에는 플란넬 셔츠를, 그 아래에는 양모 속옷을 입고 있었다.) 웅크리고 앉아 있으니 경찰 일이란 겨울과 굉장히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은 사람을 닳게 만들었다. 눈이나 얼음, 진눈깨비,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비 같은 것들이 두 손을 들고 항복할 의사를 표시할 때까지 계속해서 들이닥쳤다. 그러나 봄이 찾아와 얼음을 녹이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까지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면 다음 겨울이 들이닥치는 것이었다.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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