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2013년의 첫 영화(<아무르>)와 첫 책(『애도 일기』)이 모두 ‘죽음’을 소재로 한 것이라 조금은 묵직하게 한 해를 시작했다. 평온하게 살던 노부부의 삶에 죽음의 그늘이 드리우며 담담하게 진행되는 <아무르>와, 어머니의 죽음 이후 2년 간 써내려간 메모를 모은 『애도 일기』는 부부 간과 모자간이라는 관계의 차이, 죽음 이전이냐 이후냐 하는 시점의 차이 등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다른 점들이 있긴 했으나, 모두 죽음을 매개로 인간의 나약함이나 절망 등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면을 직면하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맞닿아 있었다. 

 

  『애도 일기』는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지만 단순한 사모곡이 아니다. 롤랑 바르트의 슬픔은 “그러니까 외로움 때문이 아니다. 그 어떤 구체적인 일 때문이 아니다”. 그의 “슬픔이 놓여 있는 곳, 그곳은 다른 곳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라는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그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47쪽)이다. 과한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롤랑 바르트는 자신의 어머니를 단순히 부모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어머니가 떠난 뒤에도 그는 어머니를 "부드러움, 활기, 고매함, 선함"(205쪽)으로 정의하고, "아직도 마망과 '이야기를 한다'(현재형으로). 하지만 이 이야기는 마음속에서 나누는 대화가 아니라(나는 마음속에서 그녀와 얘기를 해본 적이 없다), 살아가는 방식 안에서 존재하는 대화다: 매일매일의 일상 속에서 나는 그녀의 가치관을 따라서 살려고 애를 쓴다: 그녀가 했던 것처럼 식사를 하고, 집 안을 정리하면서, 윤리와 미학이 하나가 되는 삶, 비교 불가능한 생활양식, 그것이 그녀가 일상을 보내던 방식이었다"(200쪽)라고 무결한 존재로 칭송한다. 물론 그의 말처럼 그의 어머니가 그런 존재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녀를 성역화한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동시에 "오직 그녀를 위해서만 존재했었다"(26쪽)는 회고나 "나의 롤랑, 나의 롤랑"(50쪽) 같은 대화를 읽을 때면 둘이 단순한 모자간이 아닌 연인 같다는 생각도 슬몃 들었다.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가 없"(165쪽)는 사회 속에서 그는 '애도'를 통해 자기 자신의 죽음과도 직면한다. 누군가를 잃고 나서 이렇게 절절한 감정에 휩싸여보지 못한 내 입장에서는 때로는 그의 이런 '애도'가 과도한 집착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니 결국 그의 이런 애도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매개로 자신의 죽음과 대면할 수밖에 없었던 것 혹은 어머니의 죽음을 매개로 내재되어 있던 그의 죽음 지향이 발현된 것만 같았다. "마망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는, 지금까지는 추상적이기만 했던 사실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으므로, 이 논리를 따라서 나 또한 죽어야만 한다는 확신은 어쩐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216쪽)는 구절을 읽으며 "외롭고 싶지 않아"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외로움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처럼 한편으로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죽음을 동경한 것이 아니었을까. 

 

  롤랑 바르트의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그의 텍스트를 직접 꼼꼼히 읽어본 적도 없고, 그의 삶에 대해서도 면밀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선행 작업(?)이 없이도 『애도 일기』를 읽어가도 괜찮을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짤막한 메모가 이어져서 어렵지 않게 읽어갈 수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겪기 이전에 그에게 죽음에 대한 의식이 "예전에는 그저 남에게서 빌려온(졸렬한, 다른 사람들에게서, 철학에서 얻어낸) 것"(129쪽)이었다면 언젠가 이것이 "나 자신의 것"이 된다면 지금과 생각이 많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메모를 읽으며 때로는 경탄하기도 하고, 때로는 심드렁하기도 했지만, 삶과 죽음, 사랑과 상실 등에 대해 다층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서 좋았다. 올 한 해를, 아니 남은 삶을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나 스스로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시간이 흘러 많은 경험이 쌓이고 난 뒤 다시 읽으면 다르게 다가올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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