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알겠는가? 그 어떤 귀중한 것이 이 메모들 안에 들어 있을지. -17쪽
애도가 하나의 작업이라면, 애도 작업을 하는 사람은 더이상 속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도덕적 존재, 아주 귀중해진 주체다. 시스템에 통합된 그런 존재가 더는 아니다. -18쪽
나는 이 일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결국 문학이 되고 말까 봐 두렵기 때문에. 혹은 내 말들이 문학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다름 아닌 문학이야말로 이런 진실들에 뿌리를 내리고 태어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33쪽
나의 슬픔은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나의 슬픔은 그러니까 외로움 때문이 아니다. 그 어떤 구체적인 일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들이라면 나는 어느 정도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가 있다. 생각보다 나의 근심 걱정이 그렇게 심한 건 아니라는 믿음을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일종의 가벼움 혹은 자기관리가 그런 일들 속에서는 가능하다. 나의 슬픔이 놓여 있는 곳, 그곳은 다른 곳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라는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그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47쪽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용기"를 가지라고. 하지만 용기를 가져야 했던 시간은 다른 때였다. 그녀가 아프던 때, 간호하면서 그녀의 고통과 슬픔들을 보아야 했던 때, 내 눈물을 감추어야 했던 때. 매 순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얼굴을 꾸며야 했던 때. 그때 나는 용기가 있었다. -지금 용기는 내게 다른 걸 의미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 그런데 그러자면 너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51쪽
죽음이 하나의 사건이 되는, 다가오고 있는 모험이 되는 때가 있다. 그런 때 죽음은 운동을 일으키고, 흥미를 자극하고, 긴장감을 깨우고, 행동을 하게 하고, 마비를 일으킨다. 하지만 죽음이 더는 사건이 되지 못하는 그런 날이 온다. 그때 죽음은 그저 일정한 시간의 연장, 딱딱하고, 뻔하고, 특별한 것도 없고, 지루하고,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일 뿐이다. 진정한 슬픔은 그 어떤 내러티브의 변증법보다도 강력하다. -60쪽
그 누구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그것도 대답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78쪽
나는 외롭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외로움이 필요하다.-101쪽
이런 말이 있다(마담 팡제라가 내게 하는 말):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차츰 나아지지요-아니,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 -111쪽
마망이 영원히 그리고 완전하게 죽고 없다는 생각과 확인("완전하게": 그 생각에 오래 머물 수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자꾸만 하게 되는 그런 생각이 있다). 그건 정말 말 그대로 (말 그대로, 그러니까 동시적으로), 나 또한 영원히 그리고 완전하게 죽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애도(지금 내가 겪고 있는 애도)의 슬픔은 래디컬하게 그러니까 새로운 방식으로 죽음을 길들이는 일이다; 왜냐하면 죽음에 대한 의식이 예전에는 그저 남에게서 빌려온(졸렬한, 다른 사람들에게서, 철학에서 얻어낸) 것이었다면, 지금 그것은 나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고통스러운 건 죽음의 의식 때문이 아니다. 그건 나의 애도 때문이다. -129쪽
모든 일들은 아주 빨리 다시 시작되었다: 원고들, 이런저런 문의들, 또 이런저런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사랑을 또 인정받기를) 가차 없이 얻어내려고 한다: 그녀가 죽자마자 세상은 나를 마비시킨다, 산 사라믕ㄴ 살아야 하는 거야,라는 원칙으로. -157쪽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다. 이 슬픔은 절대적 내면성이 완결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65쪽
누구나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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