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이든 필포츠 지음, 이경아 옮김 / 엘릭시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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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모은 사실들이 변변치 않다고 해도 절대 부정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마크는 격해진 감정을 살짝 드러내며 항변했다.
"그것들은 무쇠처럼 단단합니다. 제 눈과 관찰력은 정확하고 빈틈없이 사실을 보도록 훈련받았습니다. 아무리 종합적 사고로 본다고 해도 일 더하기 이가 삼이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건스씨."
"그러지 않아. 일 더하기 이는 이십일이 될 수도 있고 십이가 될 수도 있어. 아니면 이분의 일이 될 수도 있고. 왜 무작정 결론부터 내리나? 자네는 사건에 관련된 사실을 찾았어. 하지만 유용한 사실을 전부 찾아낸 것은 아니야. 아니면 전부 찾은 것처럼 보이는 거겠지. 벽도 세우기 전에 지붕부터 올릴 셈인가? 게다가 자네가 말하는 '무쇠처럼 단단한' 사실들은 사실도 뭣도 아니야."
"그럼 대체 뭐란 말입니까?"
"정교하게 조작된 허구라네, 마크."-260~1쪽

헌신적인 우정의 유일한 단점이 뭔지 아나, 마크. 아무리 좋은 우정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사실일세. 그 늙은 책벌레에게 '잘 있게'라고 인사를 하고 헤어지면 아마도 우리는 다시 못 볼 거야. 하지만 그런 이별이 두려워서 진정한 우정을 거부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우의를 다지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신과 비슷한 영혼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경험이라네. 사랑은 우정보다 더 멋진 모험일 걸세. 하지만 젊은이, 사랑의 장밋빛 마차 곁에는 뇌성벽력이 도사리고 있다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귀한 선물을 쟁취했다면 기꺼이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지. 그러니 내게는 이런 차분한 우정이면 족하네! -271쪽

"사실 '오직 인간만이 비도덕적이지'."
그는 이렇게 말을 끝맺었다. 이 말에 씁쓸함이 파도처럼 밀려와 마크의 가슴을 적셨다.
마크가 대꾸를 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은 인간의 비도덕성을 맴돌죠. 저는 가끔 제가 싫습니다. 식료품 가겐 포목점을 하거나 군인이나 선원이 되었다면 차라리 더 좋지 않았을까요? 건스 씨, 제 인생을 건 일이 누군가의 사악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모멸감을 느낍니다. 우리 기술이 활과 화살처럼 진부한 것이 될 날이 오기만 바랄 뿐입니다."-282~3쪽

"괴테가 뭐라고 했던가? 인간이 백만 년을 살아도 성가신 장애물이나, 그 장애물을 정복하도록 몰아붙이는 압박감은 줄어들지 않을 거라고 했지. 그리고 그 누구보다 현명했던 몽테뉴도, 자네 꼭 몽테뉴를 읽어 보게, 이런 말을 했지. 인간의 지혜는 자신이 정한 완벽한 이상에는 절대 도달할 수 없다고 말이야. 설령 그곳에 도달하더라도 다시 그 너머의 또 다른 이상을 넘어서도록 자신을 몰아붙인다는 거야. 다시 말해서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이 세상에 나쁜 놈들이 부족할 일은 없을 거야. 그런 놈들을 다 잡아들이도록 사람들을 훈련할 수도 없어. 어떤 형태로든 범죄는 계속될 걸세. 인류가 존재하는 한 말이야. 게다가 범죄자들은 나날이 영리해질 거야. 그러니 우리도 분발해야겠지."-283쪽

뛰어난 탐정이나 형사는 무엇보다 어떤 문제든지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양쪽 입장을 다 고려할 줄 알아야 한다. 수사 과정에서 마주치는 문제의 열에 아홉은 오로지 한 가지 면밖에 없다. 그런데 탐정이든 형사든 이런 능력이 부족한 탓에 엉뚱한 사람을 교수대로 보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다시 말해 그럴듯한 가설을 따라가 잘못된 전제를 바탕으로 명백하고 뻔한 결론만 좇다 보니 논리적인 전제는 끝장이 나 버리는 것이다. -299쪽

"내일 일을 누가 알겠습니까.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면 세상을 지배할 수도 있을 겁니다."
"내일도 오늘과 다름없는 하루라면 좋겠군."
그러자 주제페가 대꾸했다.
"탐정이라면 모름지기 희망을 품어야죠. 때로 탐정에게 가진 것이라곤 희망뿐일 수도 있으니까요."-3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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