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열정이 그러했고 청춘의 열정이 그러했고 먼 곳을 향한 열정이 그러했듯 가지고 있는 자와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그런 것. 이를 테면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쪽
사랑의 시작은 그래요. 어떤 이상적인 호감의 대상이 한번 내 눈을 망쳐놓은 이후로, 자꾸 내 눈은 그 사람을 찾기 위해 그 사람 주변을 맴돌아요. 한 번 본 게 다인데 내 눈은 몹쓸 것으로 중독된 무엇처럼 그 한 사람으로 내 눈을 축축하게 만들지 않으면 눈이 바싹 말라비틀어질 것 같은 거죠.
하지만 이 그림은 혼자서만 애태우는 사랑이 아니라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의 존재 때문에 애달파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부딪치고 나면 아마도 두 사람은 마음을 터놓으면서 자신의 감정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르죠. "사실, 난…… 오래전부터, 당신을 좋아하고 있었어요." 이 말을 동시에, 둘이서, 상대방이 똑같은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두 사람 말이 골목 가득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는 거예요. --쪽
당신은, 당신이 사는 집의 크기를 100이라고 친다면 나는 얼마쯤이었을까. 당신은, 당신이 알고 있는 가장 많은 숫자가 1000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 가운데 얼마였을까. 당신은… 당신의 만 개쯤이나 되는 생각 속에 내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얼마쯤이었을까. --쪽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기차다. 함께 타지 않으면 같은 풍경을 나란히 볼 수 없는 것. 나란히 표를 끊지 않으면 따로 앉을 수밖에 없는 것.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같은 역에서 내릴 수도 없는 것. 그 후로 영원히 영영 어긋나고 마는 것. --쪽
무엇 때문에 난 사랑하지 못하는가, 하고 함부로 생각하지 마라. 그건 당신이 사랑을 '누구나, 언제나 하는 흔한 것' 가운데 하나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왜 나는, 잘하는 것 하나 없으면서 사랑조차도 못하는가, 하고 자신을 못마땅해하지 마라. 그건 당신이 사랑을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흔한 것도 의무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이다.
사랑해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잃어온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사랑해라, 사랑하고 있을 때만 당신은 비로소 당신이며, 아름다운 유일한 한 사람이다. --쪽
발걸음을 멈춰 서서 자주 뒤를 돌아다본다. 그건 내가 앞을 향하면서 봤던 풍경들하고 전혀 다른 느낌을 풍경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지나온 것이 저거였구나 하는 단순한 문제를 뛰어넘는다. 아예 멈춰 선 채로 멍해져서 그 자리에 주저앉는 일도 생겨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뒤돌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냥 뒤로 묻힐 뿐인 것이 돼버린다. 아예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린다. 내가 뒤척이지 않으면, 나를 뒤집어놓지 않으면 삶의 다른 국면은 나에게 찾아와주지 않는다. 어쩌면 중요한 것들 모두는 뒤에 있는지도 모른다. --쪽
간혹 사람들은 묻는다. 왜 그렇게 다녀야만 하냐고. 피의 문제라고 대답도 했다가 결핍의 문제라고도 했다가 나도 잘 모른다, 라고 대답을 해왔다. 상상력을 위해서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폼 잡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상상력이 부족해서 더 가난한 시대에, 사람들은 함부로 남을 이야기할 때만 상상력을 동원한다. 그 뻔한 상상력만으론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모르고 사는 눈치다. 진정으로 남의 입장이 되어보기 위해서, 낯선 공간으로 끌려들어가기 위해서, 그렇게 먹먹해지고 막막해져서 조금 나은 상상력의 밑천을 짊어지고 돌아오기 위해 나는 먼 길에 머무르기를 좋아한다. --쪽
여행은, 120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곳'을 찾아내는 일이며 언젠가 그곳을 꼭 한 번만이라도 다시 밟을 수 있으리란 기대를 키우는 일이며 만에 하나, 그렇게 되지 못한다 해도 그때 그 기억만으로 눈이 매워지는 일이다. --쪽
힌두교도의 말 중에는 '중요한 것은 우주를 한바퀴 도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중심을 한바퀴 도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쟝 그르니에의 <섬>에 나오는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중심'이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겪고, 무엇을 이해하는지의 핵심은 항상 '중심'에 있다. --쪽
거기, 길이 있었다.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고, 운수 좋은 일이 닥칠 것 같은 길이었다. 애초부터 그 길을 가려고 한 건 아니었다. 다른 길로 가려 했지만 뭔가 자꾸 잡아당기는 기분이 들었던 길. 그래도 그 길로 들어서지는 않았다. 다른 길로 가다 보니 어느새 길은, 이쪽 길로 이어져 있었다. 다른 길로 가도 한 길이 되는 길의 운명. 길의 자유. 그 길 위에 나는 서 있었다. 그 길에 서 있음으로써 나는 살 것 같았다. --쪽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상처 때문에 떠난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사람으로부터 내가 사는 곳으로부터 떠나 눈발이 된다. 사는 일 또한 그랬다. 차곡차곡 쌓인 사람과 희망에 대한 환상으로 살면서, 때론 조용히 허물어지는 것까지도 바라보는 것. 끊임없이 뭔가가 닥치는 일이 인생이고, 그 닥치는 일을 잘 맞이하고, 헤치고 그러다 다시 처음인 듯 끌리고 하는 게 인생의 길이란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모든 이들의 바람처럼 그 인생을 통째로 느끼고 싶었고, 느끼며 살고 싶었을 것이고, 그래서 이 책의 바탕은 그것이 된다. 조금 욕심을 낸다면 그 느낌들을 당신에게 전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같이 가주었음 한다. 내 길에 당신도 함께해줬으면 한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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