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어디서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다. 언제 헤어지게 되더라도, 헤어진 후에 남편의 기억에 남아있는 풍경 속의 내가 다소나마 좋은 인상이기를, 하고 생각한 것이다-65쪽
하루하루를 살아감ㄴ서 아무튼 들러붙어 자는 것이 바람 역할을 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과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것, 몇 번이고 되풀이해 듣는 음악이 또 바람이 되어준다. 그런 소박한 일들에서 위안을 얻지 못하면 도저히 사랑은 관철할 수 없다-74쪽
하얀 꽃잎을 올려다보면서 내년에도 이 사람과 함께 벚꽃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단순한 의문문으로. '함께 보고싶다'가 아니라 '과연 함께 볼 수 있을까'하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때 내 인생이 조금은 좋아진다. 묘한 느낌이다. 내년에도 이 사람과 함께 벚꽃을 볼 가능성이 있다. 아주 희망에 찬 생각이라고 나는 기뻐한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함께 벚꽃을 볼 가능성이 있기에 가능한 기뿜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행복한 것은 많은 가능성 속에서 한가지가 선택되기 때문이고, 그 선택에 나는 가슴이 설렌다-79쪽
결혼한(또는 결혼한 적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왜 결혼에 대해 별 얘기를 하지 않는지, 스스로 해보고야 알았다. 꿀처럼 행복하고 아까워서 말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고, 그렇다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우울해서 말하지 않는것도 아니다. 그저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혼이 너무도 특수하고 개인적이어서, 우연과 필연이 꽈배기처럼 꼬여 설명하기 곤란한 양상을 띠고 있기에-87쪽
관용은 우리집의 키 포인트다. 그것 없이는 유지가 안 된다. 하지만 관용은 부부 중 어느 한 쪽이 갖고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양쪽 다 관용이 넘친다면 그것도 곤란할 것 같다-97쪽
결혼은 움직이는 보도 같은 것이어서, 가만히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고 만다. 어딘지도 모르고, 어쩌면 가고 싶지도 않은 장소로. 그래서, 거기서 가만히 있자고 생각하면 그만 뒤로 걷게 된다. 움직이는 보도에 저항하기 위해.-102쪽
종종 왜 결혼을 했느냐는 질문을 당하는데, 나는 어쩌면 나만의 남자를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결혼할 당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애정과 혼란과 행복한 우연 끝에 나만의 남자를 원했던 것 같고, 또 누군가만의 여자이기를 절실하게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의 여자. 서글프게도 결혼의 참맛은 이 1대 1이라는데 있는 것 같다.-103쪽
화해란 요컨대 이 세상에 해결 따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의 인생에서 떠나가지 않는 것, 자신의 인생에서 그 사람을 쫓아내지 않는 것, 코스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는 것-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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