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에 오르기 위해 석 달동안 새벽 신문을 돌렸습니다' 한 사진 현상업소의 광고문구. 사진 작가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그는 자랑스럽게 웃고 있었다. 정말로, 그는 석 달 동안 새벽 신문을 돌렸을 것이다. 돈보다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였겠지만. 나는 그가 부러웠다. 꿈꾸는 일을 위해 석 달을 하루같이 뭔가를 할 수 있는 그가 경이로웠다. 나였다면 단 일주일도 힘들었을 터이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 때문에 굴러간다.-76쪽
어느 날 그녀가 아무 말 없이 결근했다. 함께 일을 한 지 두 달만의 일이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하루종일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사람을 기다려본 적이 언제지? 나는 멍하니 앉아 카드 게임을 하면서 햇수를 꼽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나도 누군가를 기다려본 일이 있었다. 추웠다는게 기억나는걸로 봐서 겨울이었을 거고 실외였을 게다. 끝까지 나타나지 않는 사람을 증오하며, 그 사람을 증오하는 자신을 증오하며, 증오하면서도 증오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실없음을 증오하며 나는 아주 오래도록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83쪽
그녀를 기다리기 위해 나는 카드 게임을 시작했다. 컴퓨터의 손 놀림은 신속하고 정확하다. 그는 신속하게 카드를 배열하고 거두어간다. 기다릴 필요는 없다. 잘 섞여 있는 카드들을 숫자 순서대로 배열하면 게임은 끝난다. 어렸을 적, 골방에서 할머니가 홀로 반복하던 화투놀이와 닮아 있다. 목표는 오로지 다시 시작하는 것. 난관이 있다면 원하는 패가 나오지 않는 것뿐이다. 원하는 패가 나와서 모든 패가 질서정연하게 다 맞아떨어지면 게임은 끝난다. 그럼 카드를 다시 섞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한다. 어쩌면 '원하는 패'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패'를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게임이 영원하기를 바라면서 한패 한패 뒤집는 것일지도.-84쪽
살다보면 이상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아침부터 어쩐지 모든 일이 뒤틀려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하루종일 평생 한 번 일어날까말까 한 일들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하나씩 하나씩 찾아온다.-101쪽
|